어떤 두려움이 주저하게 하는가?
출애굽기 2장 1~10절 / 허락하신 새 땅에 (347장)
1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2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3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4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 5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6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7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8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9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10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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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에게 두려움은 우리를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저하고 움츠려들게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두려움의 현실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려움 앞에서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우리를 나아가게 하는 믿음의 열쇠들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그 열쇠들을 찾고 새해 주저함이 아닌 당당히 나아가는 삶의 길을 도전받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1.우리를 주저하게 하는 두려움들은 무엇인가?
저와 여러분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두려움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애굽인들은 1장 10절에서 히브리 인들의 힘이 강해지자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 싹을 원천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16절에 아들이면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이렇듯 내 수고와 힘이 미칠 수 없는 상황들과, 무엇도 할 수 없는 현실의 누름이 덮치면 우리는 두려움에 놓이게 됩니다.
둘째는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일 때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모세가 태어났을 때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를 택해 3개월간 숨겨서 키웠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상황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는 나일강에 흘려보내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유일하게 택할 수 있는 선택지의 결과가 비참함 뿐이라는 현실에 놓일 때 우리는 깊은 두려움을 만납니다. 그리고 아무리 몸부림 쳐도 나아지는 것은 없고 점점 지치게만 되는 지금의 상황들에 서 있을 때 우리는 두려움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셋째로 내일이 없는 두려움입니다. 요게벳이 모세를 나일강에 떠나 보낸다는 것은 그녀에게 어머니로서의 내일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누군가 건져주지 않는다면 저 아이의 생명은 사라질 것이고, 설령 누군가 건져준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면 이스라엘 태생이 드러나기 때문에 어머니의 신분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어머니로서의 내일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사람이 가장 두려운 순간 중 하나는 내일에 대한 기대가 없을 때입니다. 내일 눈을 떴을 때 나를 기다리는 일이나 사건이나 사람이 하나도 없으면, 그것만큼 공허하고 두려운 순간이 없는 것입니다.
2.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인생으로 나아가라.
그렇다면 우리가 현실의 두려움들을 깨고 나갈 수 있는 성경은 어떻게 안내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라고 안내합니다. 2절을 보면 ‘모세를 잘생겼다’라고 언급합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1장 23절에서 모세를 언급하며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라고 합니다. 여기서 잘생김과 아름다움은 히브리어로 토브입니다. 그런데 이 토브의 뜻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창세기 1장에 반복해서 사용되는 단어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할 때 좋았더라가 토브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택할 때 우리는 두려움을 이기고 넘어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삶의 모습입니까? 첫째는 믿음의 접지력이 있는 삶입니다. 접지력이 좋다는 것은 지면과 잘 맞닿을 수 있는 부분이 닿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1장에는 십브라와 부아라는 두 산파가 나옵니다. 두 사람이 살았던 삶을 대표적으로 표현하는 본문이 1장 17절과 21절입니다. 성경은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경외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로 인해 두 산파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믿음의 접지력이 닿지 않고 잘 서 있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선택을 의심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길은 세상이 내게 주는 두려움보다 내 하나님의 능력과 나를 흥황케 하실 그 역사가 더 크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을 때입니다.
둘째는 세상이 나를 어떤 존재로 여기는지를 아는 삶입니다. 바로가 이스라엘 남자 아이들을 죽이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장 10절에서 바로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라고 말합니다. 바로에게 하나님이 택하신 저 이스라엘은 두려운 존재였기에 두려움을 들키지 않고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단이 세상의 수많은 것들로 우리를 미혹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려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람이 두려운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일제시절 일본이 믿음의 사람들을 박해하고 순교케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람, 그리스도인들이 두려운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삶을 보이고, 그들로 인해 자신들의 권력이 사라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상대가 되지 않으면 관심도 갖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로 자녀가 된 순간부터 세상은 나를 두려워하는 존재라는 믿음의 정의가 저와 여러분 안에 있길 소망합니다.
셋째는 갈대상자를 손에서 놓는 삶입니다. 요게벳은 어떻게든 모세를 살려보고자 역청과 송진을 발라 갈대상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자에 아이를 담아 나일강로 왔습니다. 상황을 모르는 세달밖에 되지 않은 아이는 상자 속에서 계속 울고 있습니다. 그때 요게벳이 그 상자를 손에서 놓는 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몇 번을 망설였을 것입니다. 왜냐면 놓는다는 건 아이의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상자를 놓는 그 순간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야훼 하나님께 모든 상황을 맡기는 것 말고는 말입니다. 오늘 말씀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안내합니다. 붙잡고 있으면 내 일이 되지만, 놓는 순간 하나님의 개입하심과 일하심이 열린다고 말입니다. 붙잡고 있으면 살 것 같지만, 죽는 것이고 흘려보내면 살아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내 인생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분명하게 경험하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내가 붙잡고 있는 갈대상자에서 손을 놓아야 합니다. 흘려보낼 수 있는 믿음의 용기와 놓음이 하나님이 내 삶에 역사하시고 살아계심을 가장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만나는 시작점이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써 가시는 위대한 역사 중심에 서라
출애굽기 1장과 2장을 보면 결코 좋은 시절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좋지 않다기 보다는 좋은 것을 찾을 수 없는 상황들 투성이입니다. 출1장 14절에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라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무엇하나 좋음이 없는 불안과 공포와 비극이 난무하는 시대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시대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벽돌을 만들라 하면 만들고 아들을 강물에 던지라고 하면 가슴이 찢어지지만 던지면 자신은 죽음을 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본문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는 비극의 시대 속에서 멈춰있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 믿음의 역사의 관점을 가지고 두려움이 위협하는 삶 속에서 승리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해 나가시는 위대한 역사의 한 가운데 서서 동참하는 사람이 결국 건짐을 받는 것입니다. 산파들이 그러했으며 요게벳이 그러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올 해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은 하나님께서 써 내려가시는 위대한 역사의 중심에 서 있겠다라는 결단 니다. 선교의 역사, 사랑의 역사, 화해의 역사, 나아감의 역사 등 말입니다. 모세의 이름의 뜻은 건져냄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 가운데 서 있는 결정을 하면 내 안의 불안과 공포는 가라앉을 거라고 속이고 움츠려들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역사의 중심에 서 있는 이를 견져내십니다.
인생의 어떤 두려움 가운데 서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위대한 역사의 한 가운데 서서 동참하십시오. 그때 우리의 눈을 덮고 있던 두려움의 허물이 벗겨지며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역사를 경험하길 소망합니다.
□ 말씀 다지기 (함께 되새김질 하는 시간입니다.)
1. 우리 인생을 살면서 두려움을 갖게 하는 경우들은 무엇이 있나요?(세 가지)
2. 성경은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길은 무엇이라고 안내하고
있나요?(출2:2, 히11:23)
3. 하나님이 좋게 여기시는 삶이 되는 길은 무엇인가요?(세 가지)
4. 성경은 불안과 두려움이 위협하는 시대에서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는 길은 무엇이라고 안내하고 있나요?
□ 말씀 적용하기 (서로 삶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1. 올 해 내 인생 가운데 주저하게 하는 두려움의 상황들은 무엇이 있나요?
2. 우리가 하나님과 믿음의 접지력이 좋아 하나님을 경외하는 선택으로
흥황케 된 은혜는 무엇이 있나요?
3. 우리가 내 손에서 놓아 흘려보내야 하는 삶의 갈대상자들은 무엇이 있나요?
4. 올 해 하나님이 그리시는 선교와 사랑의 역사의 중심에 서기 위한 삶의
결단들은 무엇이 있나요?
□ 기도하기
소망의 주님,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의 벽과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는 상황과 내일이 없음은 우리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그때 주님이 좋게 여기시는 삶으로 그 두려움을 이기게 하소서. 이를 위하여 믿음의 접지력이 있는 삶, 세상이 나를 어떻게 여기는지를 새롭게 정의 하는 삶, 갈대상자를 놓을 수 있는 삶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두려움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써 가시는 위대한 역사 가운데 쓰임받는 주의 자녀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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