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참 포도나무는 누가 되어야 하는가?
요한복음 15장 1~10절 / 주의 곁에 있을 때 (401장)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0. 들어가는 글
오늘은 새롭게 시작한 24년도 1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더 많이 생산하는 성과주의가 지배합니다. 사람들이 성과주의에 목을 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 척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성과를 내면 상을 받는다는 관념에 지배당하며 살았습니다. 학교생활도 모든 과목에 수를 더 받은 성과를 낼 때 우등생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또한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성과를 내야만 연봉과 승진으로 인정받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만약 주님의 교회가 성과에 따라 인정받는다면 세상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성도들이 성과주의에 지배받기 때문에 오늘 본문을 보면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며 버림받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열매보다 더 강조하는 것을 찾아야만 올바르게 묵상할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비교해도 오늘 본문에서 ‘열매’와 ‘거하고’의 단어가 몇 번씩 나옵니까? ‘열매’는 6번, ‘거하고’는 9번 나옵니다. 주님이 ‘열매’보다 더 강조하는 것이 ‘거하고’ 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이 ‘열매’보다 ‘거하고’가 더 강조하는 이유를 깨닫고 우리의 삶에 적용하기를 소망합니다.
1. 주님이 ‘열매’보다 ‘거하고’를 더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첫째로 우리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고 합니다(4절). 여기서 ‘주님 안에 거하라’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참포도나무 되신 예수께 붙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포도나무 되신 주께 붙어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스스로 해내는 것을 미덕이라고 칭찬합니다. 그러나 주께서 우리를 ‘가지’라고 하는 이유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만 열매를 맺는 의존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차별성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스스로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구원의 손길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을 깨닫고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의존적인 신앙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합니다(5절). 주께서는 가지가 되는 우리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포도나무 되신 주께 붙어서 진액을 공급받는 만큼 열매 맺는 것이 나타납니다. 저에게 코로나 직전에 개척 교회에서 목회 연수가 길어지다 보니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이 찾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코로나가 저에게 긴장감을 주어서 무기력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내가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이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가지인 것을 고백하며 주께 붙어 있을 때 진짜 극복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난주 새벽에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가지이니 주께 붙어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이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가지가 되어서 오직 주께 붙어 있는 믿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셋째로 주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막대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고 합니다(6절). 여기서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는“ 것은 가지치기를 해서 마른 막대기가 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에서 죽은 순과 죽어가는 순에게 가지치기를 해야 합니다. 우리 몸에서 암덩어리를 제거하듯이 죄악의 암덩어리도 가지치기를 해야 합니다. 또한 영양분만 앗아가는 순도 가지치기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 생활에서 영양분을 빼앗아갈 만큼 지나친 게임이나 유투브나 스마트폰 사용 등도 가지치기를 해야 합니다. 주께서 죽은 순과 영양분을 빼앗는 순을 가지치기하는 이유가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목적입니다. 우리의 가지가 마른 막대기로 되지 않고 깨끗하게 되기 위하여 주님의 가지치기가 잘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우리가 성과보다 연결을 더 우선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무엇을 하는 것보다 함께 있는 것을 더 우선해야 합니다. 세상의 관점은 무엇을 해서 성과를 내는 것으로 자신의 공로를 인정받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은 주님에게 붙어 있는 연결을 통해 진액을 공급받아 열매를 맺으라고 합니다(5절). 그러므로 성도는 무엇을 해서 성과를 내는 것보다 주님과 함께 연결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방문했을 때 마르다는 주님을 대접하는 성과를 통해 인정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주님과 함께 연결되는 말씀의 교제를 통해 공급받으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는 성과보다 함께 있는 연결을 더 우선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시급한 것보다 거하는 것을 더 우선해야 합니다. 세상의 관점은 시급하게 성과를 낼수록 능력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은 시급하게 성과를 내는 것보다 주님 안에 거하는 연결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성과보다 주님 안에 거하는 연결이 더 중요한 이유는 사랑의 관계를 만들기 때문입니다(9절). 마르다는 주께 대접하는 성과가 시급했기 때문에 동생 마리아가 돕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주님 안에 거하는 연결을 통해 말씀을 듣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우리는 시급하게 성과를 내는 것보다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랑의 연결을 더 우선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셋째로 일시적인 것보다 영원한 것을 더 우선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하는 일은 다 일시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 거하며 사랑을 나누는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일시적으로 하다가 사라지는 것보다 주님과 함께 영원히 거하며 말씀 듣는 사랑이 더 중요합니다. 마르다가 주께 대접하는 일은 일시적이지만, 마리아가 주께 말씀을 듣는 사랑은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는” 영원한 것이라고 합니다(눅10:42). 우리는 세상에서 일시적으로 하다가 사라지는 것보다 주님과 함께 영원히 거하며 말씀을 듣는 사랑을 더 우선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 우리의 참포도나무는 누가 되어야 합니까?
첫째로 우리는 참포도나무 되신 예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고 합니다(1절). 세상에 가짜 포도나무가 많기 때문에 오직 예수만 ‘참포도나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가짜 포도나무는 맘몬 포도나무입니다. 맘몬의 물질에 붙어서 진액을 공급받고자 합니다. 하나님보다 맘몬의 물질을 더 사랑하는 우상으로 만듭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가짜 포도나무는 정보 포도나무입니다. 세상에서 쏟아지는 정보에 붙어서 진액을 공급받고자 합니다. 주님의 말씀보다 세상의 정보를 더 의지하며 행동합니다. 사람들을 다투게 만드는 가짜 포도나무는 정치 포도나무입니다. 세상의 정치에 붙어서 진액을 공급받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화목하게 하기보다 정치의 색깔에 따라서 편가르기를 합니다. 우리는 참포도나무 되신 예수께 붙어서 말씀의 진액을 받는 사랑으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아버지께서 ‘아이로’하는 것이 어떤 의미로 들립니까? 주님은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신다”고 합니다(2절). 여기서 제거한다의 헬라어가 ‘아이로’이며, 네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 번째 뜻은 ‘들어 올리다’이고, 네 번째 뜻은 ‘제거하다’ 입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처져 있으면 들어 올려 묶어주는 ‘아이로’ 작업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첫 번째가 아니라 네 번째의 제거한다는 ‘아이로’로 번역했습니다. 첫 번째의 ‘아이로’는 사랑의 하나님이지만, 네 번째의 ‘아이로’는 심판의 하나님입니다. 요한복음을 번역하는 분이 사랑의 하나님보다 심판의 하나님으로 느껴져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어떻게 만났느냐에 따라서 ‘아이로’를 받아들이는 의미가 달라집니다. 우리 딸이 도로에서 접촉사고를 내서, 내가 아이로 하겠다고 합니다. 우리 딸이 사랑의 아빠로 느끼면 문제를 해결해 주는 아이로가 되고, 두려운 아빠로 느끼면 관계를 단절하는 아이로가 됩니다. 우리가 인생의 문제를 만날 때 하나님이 심판의 ‘아이로’가 아니라 사랑의 ‘아이로’로 되어 새롭게 변화되기를 소망합니다.
□ 말씀 다지기 (함께 되새김질 하는 시간입니다.)
1.주님이 ‘열매’보다 ‘거하고’를 더 강조하는 세가지 이유는 무엇인가요?
(4,5,6절)
2. 우리가 성과보다 연결을 더 우선하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는 무엇인가요?
(5,9,눅10:42)
3. 오늘날 참 포도나무가 아니라 거짓 포도나무들은 무엇이 있나요?(1절)
4. 오늘 본문에서 ‘아이로’의 첫 번째와 네 번째 뜻은 무엇이며, 어떤 차이가
있나요?(2절)
□ 말씀 적용하기 (서로 삶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1.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하여 자책하거나 두려웠던 경험들은 무엇이 있었나요?
2. 우리가 주님과 함께 거하고 있음으로 사랑을 나누는 것들은 무엇이 있었나요?
3. 우리가 거짓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 진액을 공급받았던 경험들은 무엇이 있었나요?
4. 주님의 ‘아이로’가 심판의 느낌과 사랑으로 느꼈던 경험들은 무엇이 있었나요?
□ 기도하기
사랑의 주님! 우리는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을 알고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의존적인 신앙이 되며,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이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가지가 되어 주께 붙어 있는 믿음이 되며, 가지가 마른 막대기로 되지 않고 깨끗하게 되기 위해 주의 가지치기가 잘 되게 하소서. 우리는 무엇을 하는 성과보다 함께 하는 연결을 더 우선하며, 시급하게 성과를 내는 것보다 주 안에 거하는 사랑의 연결을 더 우선하며, 세상에서 일시적으로 하는 것보다 주와 함께 영원히 거하며 말씀을 듣는 것을 더 우선하게 하소서. 우리는 참포도나무 되신 예수께 붙어서 말씀의 진액을 받는 것으로 살며, 우리가 인생의 문제를 만날 때 심판의 ‘아이로’가 아니라 사랑의 ‘아이로’로 되어 새롭게 변화되게 하소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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