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슬럼프에 빠진 증상들은?
열왕기상 19장 1~8절 / 하나님의 부르심
1.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2.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3.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4.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5.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6.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7.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8.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0. 들어가는 글
오늘은 6월 마지막 주일이며, 금주가 지나면 상반기를 마감하고 하반기가 시작됩니다. 성경에서 항상 자기만 바라보라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주님과 함께 붙잡혔던 바라바입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기를 소망합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오직 주님만 바라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힘차게 출발하였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서 영적인 슬럼프에 빠져 있습니다. 한해의 절반이 지나고 있는 지금 다시 한번 내 영혼을 깨워서 영적인 슬럼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영적인 슬럼프에 빠진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엘리야는 갈멜 산에서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 850명과 대결하여 승리한 믿음의 영웅입니다. 그러나 그는 영적인 슬럼프에 빠져서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엘리야가 왜 영적인 슬럼프에 빠졌으며, 어떻게 영적인 슬럼프에서 벗어났는지를 깨닫고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엘리야가 영적인 슬럼프에 빠졌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엘리야의 공로의식 때문입니다. 선지자는 갈멜산에서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 850명과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18:40). 그 결과로 이스라엘 민족의 영웅이 되어야 하는데, 그 기대와는 다르게 이세벨이 죽이겠다고 위협했습니다(2절). 엘리야는 하나님께 충성했으면 상은 주지 못할망정 오히려 죽이겠다는 위협을 받았을 때 영적인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주님께 충성했으면 복을 주셔야 하는데 오히려 현실이 더 힘들어질 때 영적인 슬럼프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들이 하나님께 충성한 후에 공로의식 때문에 영적인 슬럼프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고 합니다(눅17:10). 우리가 주님께 충성한 후에 공로의식 때문에 영적 슬럼프에 빠지지 않기 위해 무익한 종이 되어서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엘리야가 혼자라는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합 왕의 아내인 이세벨이 엘리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반드시 죽이겠다고 위협했습니다(2절). 그 소식을 들은 엘리야는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쳤다”고 합니다(3절). 그러고 그는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라고 합니다(4절). 엘리야가 자신의 생명을 위해 도망쳤는데, 그 후에는 죽고 싶다고 하며 자기모순에 빠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세상에 혼자 버려졌다는 감정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야가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한다”고 합니다(10절). 오늘날도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세상에 혼자 버려졌다는 감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며(애3:31), 또한 누군가 널 위하여 기도하는 동역자가 있음을 믿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우리가 영적인 슬럼프에 빠지면 나타나는 증상들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우리가 들은 것을 과장되게 해석합니다. 엘리야는 이세벨이 보낸 사신을 통하여 죽이겠다는 경고를 들었습니다(2절). 그녀가 정말 죽이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사전에 경고할 필요도 없이 자객을 보내어 죽이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간교한 이세벨은 사전에 경고를 통해 죽이려는 의도보다 무력화시키려는 의도가 더 강했습니다. 그리고 이세벨의 말대로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은 없을지라도 엘리야는 무력화되어서 죽고 싶을 만큼 영적인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엘리야가 영적인 슬럼프에 빠지면서 나타난 증상은 이세벨의 말을 지나치게 과장되게 해석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부풀려서 해석할수록 상처를 받아서 무력화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과장되게 해석하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함으로 영육간에 강건해지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우리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합니다. 엘리야가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고 합니다(4절). 선지자가 영적인 슬럼프에 빠지면서 나타난 증상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의식입니다. 우리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의식이 심해질수록 자신이 초라해지면서 영적인 슬럼프가 찾아옵니다. 예전에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하면 재충전을 받아야 하는데 오히려 의기소침해진 적도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를 유명한 대형 교회와 비교하면서 내 목회가 너무 초라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주신 선교의 사명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비교의식으로 영적인 슬럼프에 빠지지 아니하고 사명의식으로 주님께 충성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셋째로 자신의 수고밖에 보지 못합니다. 엘리야는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오직 나만 남았다”고 합니다(14절). 선지자가 영적인 슬럼프에 빠지면서 나타난 증상은 자신의 수고밖에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자신밖에 수고하는 사람이 없느냐는 감정이 심해질수록 피해의식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고 합니다(18절). 하나님은 엘리야뿐만 아니라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칠천명을 남겨두었다고 합니다. 오늘날도 내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이 한국교회를 섬기는 성도들을 남겨두었음을 믿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 우리가 영적인 슬럼프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손길로 재충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적인 슬럼프에 빠져서 죽기를 구하는 엘리야를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고 합니다(5절). 하나님은 사랑의 손길로 엘리야를 어루만지면서 영육간에 재충전을 받도록 합니다. 우리는 로뎀 나무의 환상에 벗어나야 합니다. 싸리나무처럼 생긴 로뎀 나무는 그늘이 없어서 평안한 안식을 제공할 수 없습니다.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는 로뎀 나무처럼 어느 곳에서도 안식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슬럼프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손길로 재충전을 받아서 다시 회복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세미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고 합니다(12절).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불을 내리는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주님의 세미한 말씀을 듣는 것이라고 합니다. 엘리야가 영적인 슬럼프에 빠진 이유도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며,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도 하나님의 세미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선지자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쳤지만” 하나님께 기도하여 세미한 말씀을 듣지 않은 것입니다(3절). 그러므로 엘리야는 도망치면서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잃어버리고 죽고 싶을 만큼 영적 침체에 빠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들려준 세미한 음성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입니다(9,13절). 엘리야가 도망친 자리에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지만, 부르신 자리에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보이는 것입니다.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도 도망칠 때는 부활의 주님이 보이지 않지만(눅24:15,16), 성찬을 나눌 때는 부활의 주님과 함께하심이 보이는 것입니다(눅24:30,31). 오늘날 우리도 도망친 자리에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않고, 부르신 자리에서 주님과 함께하심을 보면서 감사가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 말씀 다지기 (함께 되새김질 하는 시간입니다.)
1. 엘리야가 영적인 슬럼프에 빠졌던 이유는 무엇입니까?(2,10절)
2. 우리가 영적인 슬럼프에 빠지면 나타나는 증상들은 무엇입니까?(2,4,14절)
3. 우리가 로뎀 나무 환상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5절)
4. 엘리야가 하나님께 들었던 세미한 음성은 무엇입니까?(9,13절)
□ 말씀 적용하기 (서로 삶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1. 혼자라는 생각으로 슬럼프에 빠졌을 때 날 위해 기도해 준 사람은 누가
있었습니까?
2. 우리가 영적 슬럼프에 빠져 사람의 말을 부풀려서 생각했던 경험은 무엇이
있나요?
3. 우리가 주님의 손길로 어루만지심을 받아 회복된 경험은 무엇이 있나요?
4.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다고 고백할 수 있나요?
□ 기도하기
사랑의 주님! 우리가 주님께 충성한 후에 공로의식 때문에 영적 슬럼프에 빠지지 않기 위해 무익한 종이 되어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며, 누군가 널 위하여 기도하는 동역자가 있음을 믿게 하소서. 우리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과장되게 해석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함으로 영육간에 강건해지며, 비교의식으로 영적인 슬럼프에 빠지지 않고 사명의식으로 주님께 충성하며, 내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이 한국교회를 섬기는 성도들을 남겨두었음을 믿게 하소서. 우리가 영적인 침체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오직 주님이 주시는 사랑의 손길로 재충전을 받아서 다시 회복되며, 도망친 자리에서 주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않고 부르신 자리에서 주님과 함께하심을 보면서 감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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