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인생의 허무함을 극복할 수 있는가?
전도서 6장 1~12절 / 만왕의 왕 내 주께서(151장)
1.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불행한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라/ 2.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3.사람이 비록 백 명의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의 영혼은 그러한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그가 안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그보다는 낫다 하나니/ 4.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 중에 가매 그의 이름이 어둠에 덮이니/ 5.햇빛도 보지 못하고 또 그것을 알지도 못하나 이가 그보다 더 평안함이라/ 6.그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행복을 보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 7.사람의 수고는 다 자기의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채울 수 없느니라/ 8.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 살아 있는 자들 앞에서 행할 줄을 아는 가난한 자에게는 무슨 유익이 있는가/ 9.눈으로 보는 것이 마음으로 공상하는 것보다 나으나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10.이미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오래 전부터 그의 이름이 이미 불린 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나니 자기보다 강한 자와는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 11.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들이 있나니 그것들이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있으랴/ 12.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를 누가 알며 그 후에 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0. 들어가는 글
오늘은 3월 두 번째 주일이며, 사순절 셋째 주일입니다. 오늘날 21세기로 넘어오면서 가장 유행했던 흐름 중의 하나는 포스트 모더니즘입니다. 우리나라 언어로 표현하며 해체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핵심은 절대주의가 아니라 상대주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절대적인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포스트 모더니즘의 흐름은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크나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해체주의의 영향으로 절대적인 진리를 인정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더 우울해지고 허무한 감정에 사로잡히는 증상들을 보입니다. 오늘 본문의 전도서에도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울하고 허무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어떻게 인생의 허무함을 극복할 수 있는지를 깨닫고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우리가 허무함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첫째로 우리가 바람을 잡으려고 할 때 허무한 인생이 됩니다. 전도자는 “눈으로 보는 것이 마음으로 공상하는 것보다 나으나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고 합니다(9절). 사람이 바람처럼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고 할 때 허무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과학자가 동양인과 서양인에게 숲속의 표범 사진을 보여주는 실험을 했습니다. 서양인은 사진에서 표범의 모습에 집중하여 살펴보지만, 동양인은 배경이 되는 숲과 표범의 관계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로 동양인은 주변의 관계를 더 중요시하고, 서양인은 개인이 더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성향이 신앙에도 반영되어 서양인은 한번 믿으면 주변의 관계 때문에 쉽게 흔들리지 않지만, 교인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관계가 약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한국 교인은 주변의 관계를 중요시하여 소그룹 같은 모임이 세계 교회 속에서 가장 잘 되지만, 동시에 주변의 관계 때문에 시험들어 교회까지 떠나는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가 바람을 잡을 수 없는 것처럼 사람의 관계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수용하여 평안하게 살기를 소망합니다(9절).
둘째로 우리가 허무함을 느끼는 일들이 서로 다른 것입니다. 전도자는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들이 있나니 그것들이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있으랴”고 합니다(11절). 우리에게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일들이 많은 것을 보면, 또한 각자가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일들도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양인과 한국인이 허무를 느끼는 문제도 다르게 나타납니다. 서양인은 자신의 문제 속에서 인생의 허무를 느낀다면, 한국인은 주변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허무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또한 서양인은 자신의 모습에서 존재감을 찾는 개인 중심이지만, 한국인은 관계에서 존재감을 찾는 관계중심이기 때문에 허무함의 성향에 따라서 극복하는 방법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우리가 느끼는 허무함의 성향이 개인중심인지 관계중심인지를 파악하여 지혜롭게 대처함으로 잘 이겨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세상의 복을 소유해도 허무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사람들이 세상에서 소유하려는 복은 무엇입니까? 전도자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세 가지 복을 언급합니다. 하나는 “재물과 부요와 존귀”로 얻는 재물의 복입니다(2절). 둘은 "일백 자녀를 낳고"로 얻는 자녀의 복입니다(3절). 셋은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로 얻는 장수의 복입니다(3절). 그러나 세상에서 얻는 재물의 복과 자녀의 복과 장수의 복이 결국은 다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불행한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1절). 재물의 복도 자녀의 복도 장수의 복도 우리의 영혼이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면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여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혼이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아서 허무한 인생을 극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허무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랫동안 굳어진 타성에 젖었기 때문입니다. 전도자는 “이미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오래 전부터 그의 이름이 이미 불린 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다”고 합니다(10절).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이미 다 안다는 타성에 젖어 삶에 흥미를 잃어버리기 때문에 허무함이 밀려옵니다. 성도도 세월이 흐를수록 이미 다 경험했다는 타성에 젖어서 첫사랑을 잃어버리고 영적인 무기력에 빠집니다. 저도 개척하여 이십년 정도의 목회의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타성에 젖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빨리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고, 이미 다 경험했다는 감정으로 삶에 흥미를 잃으면 타성에 젖었다는 것을 깨닫고, 허무함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 인생의 허무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첫째는 자신을 사랑할 때 허무함을 극복합니다.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합니다(눅10:27). 여기서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또한 내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이웃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기 전에는 정말 내 자신의 성격이 싫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면서 내 자신을 사랑하니까 성격도 좋아지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도 생겨서 선교와 구제를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 자신을 사랑하여 인생의 허무함을 이겨내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는 마음에 소원을 가질 때 허무함을 극복합니다. 다윗은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고 합니다(시103:5). 우리가 인생의 허무함을 극복하려면 내 마음에 좋은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마음의 소원이 사라지기 때문에 인생의 허무함이 밀려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늙어가도 다윗처럼 마음의 소원을 가지면 독수리같이 새롭게 되어 허무함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의 비전 중의 하나가 죽는 그 날까지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독수리같이 새롭게 살자는 것입니다. 우리도 늙어가지만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독수리같이 새롭게 되어서 허무함을 극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셋째는 그림자 같은 인생에서 벗어날 때 허무함을 극복합니다. 전도자는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를 누가 알며”라고 합니다(12절). 사람들이 그림자처럼 존재감 없이 살 때 허무함이 밀려옵니다.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는 이스라엘도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고 그림자처럼 존재감 없는 마음을 하소연했습니다(사49:14). 그러나 주님은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고 합니다(사49:15,16). 하나님은 그들을 잊지 않으려고 손바닥에 메모가 아니라 손바닥에 파서 새겼다고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손바닥에 새긴 증거는 무엇입니까? 우리를 잊지 않으려고 십자가에서 주님이 손바닥에 못 밖인 사랑입니다. 저는 주께서 손바닥에 못 밖이어서 새긴 사랑을 알고 목회하면서 모든 불평이 사라졌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목회하는 저를 몰라줄지라도 주님이 손바닥에 새긴 사랑 때문에 허무함을 이겨내고 감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그림자처럼 몰라줄지라도 십자가에서 주님이 손바닥에 못 밖이어서 새긴 사랑 때문에 모든 허무함에서 벗어나 감사하며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말씀 다지기 (함께 되새김질 하는 시간입니다.)
1. 우리가 허무함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요?(9절)
2. 우리가 개인중심과 관계중심에서 어느 것을 통해 더 허무함을 느끼는가요?
3. 사람들이 세상에서 소유하려는 복 세 가지는 무엇인가요?(2,3절)
4. 우리가 허무함을 극복할 수 있는 세 가지 원리는 무엇인가요?
(눅10:27/시103:5/전6:12)
□ 말씀 적용하기 (서로 삶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1. 우리가 바람처럼 잡으려고 하는 헛된 일은 무엇이 있었나요?
2. 우리가 신앙의 타성에 젖어서 힘들었던 경험은 무엇이 있었나요?
3. 우리가 허무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마음의 가진 소원은 무엇이 있나요?
4. 우리가 주님의 손바닥에 새겨진 사랑을 깨닫고 허무함을 극복한 체험이
무엇이 있나요?
□ 기도하기
사랑의 주님! 우리가 바람을 잡을 수 없는 것처럼 사람의 관계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수용하여 평안하게 살며, 내가 느끼는 허무함의 성향이 개인중심인지 관계중심인지를 파악하여 지혜롭게 대처하게 하소서. 우리의 영혼이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아서 허무한 인생을 극복하며, 내가 이미 다 알고 있고 이미 다 경험했다는 감정으로 삶에 흥미를 잃으면 타성에 젖었다는 것을 깨닫고 허무함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게 하소서.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 자신을 사랑하여 인생의 허무함을 이겨내며, 우리도 늙어가지만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독수리같이 새롭게 되어서 허무함을 극복하며, 세상이 우리를 그림자처럼 몰라줄지라도 십자가에서 주님이 손바닥에 못 밖이어서 새긴 사랑 때문에 모든 허무함에서 벗어나 감사하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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