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였는가?
이사야 6장 1-8절 / 부름 받아 나선 이 몸(323장)
1.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0. 들어가는 글
오늘은 1월 세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웃시야 왕은 남유다에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다윗 왕과 비견될 만큼 성공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완전히 실패한 왕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고 합니다(대하26:16). 웃시야는 왕이 할 수 없는 대제사장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죄악을 범했습니다. 그 사건 후에 그는 나병에 걸렸습니다(대하26:20). 웃시야 왕을 보면 세상에서 성공이 하나님 앞에서 성공과 일치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성공에 도취하여 영적으로 실패한 유다 백성을 깨우려고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찾고 계십니다(8절).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도 이사야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고백하는 결단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8절).
1.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웃시야 왕은 없는가요?
첫째로 이사야가 언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입니다(1절). 왕족 출신 이사야는 하나님께 일찍이 부르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촌 형인 웃시야 왕의 덕분에 편안한 생활을 하며, 주님이 부르신 사명을 망각한 채로 현실에 안주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웃시야 왕을 통해 누리는 혜택이 많아서 주님께 기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또한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사야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던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다시 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었을 때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자신의 인생이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웃시야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하나님을 찾아서 사명을 회복하였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보다 더 혜택을 준다고 생각하는 세상의 웃시야 왕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웃시야 왕이 죽어서 다시 하나님을 찾아서 자신의 사명을 회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이사야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그는 웃시야 왕이 죽어서 의지할 곳을 잃어버렸을 때 다시 하나님의 성전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주의 성전에서 놀라운 은혜를 체험합니다. 하나는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것을 보았습니다(1절).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세상에서 제일 강하고 높은 보좌에 앉은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웃시야 왕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주께서 높은 보좌에 앉으신 것을 보았습니다. 내 인생의 가장 높은 보좌에도 오직 주님이 앉아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은 주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한 것을 보았습니다(1절). 주의 옷자락은 이사야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름을 받고도 세상의 편안함에 빠져서 사명을 망각한 채로 살았던 지난날의 허물을 주의 옷자락이 덮어주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성전에서 우리의 실수와 허물을 덮어주는 주의 옷자락을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셋은 스랍들의 여섯 날개를 보았습니다(2절).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주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습니다. 당시에 발은 더러운 냄새가 나기 때문에 가리는 것입니다. 그 둘로는 날아다녔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순종의 날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스랍의 여섯 날개를 보면서 자신의 죄악을 가리고 순종의 날개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소망합니다.
2. 이사야가 주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첫째로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천사들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고 합니다(3절). 여기서 하나님의 ‘거룩하다’를 세 번이나 반복하면서 최고로 강조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나타날 때 주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 자체이기 때문에 우리가 거룩함을 추구할 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교회를 다니면서 거룩한 척만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끼지 못하고 회의적인 신앙에 빠지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예배하면서 거룩한 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추구하여 주의 영광이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이사야는 자신의 죄악을 깨달았습니다. 선지자는 “그 때에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고 합니다(5절). 이사야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체험했을 때 반응은 무엇입니까? 나는 입술이 부정한 죄인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깊이 체험할수록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이 되는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하면 자신 얼마나 부정한 죄인인지를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체험했다고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는 얼마나 부정한 죄인인지 깨달을 때 거룩한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도 거룩하신 주님께 예배하면서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닫고 거룩한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셋째로 이사야는 주님으로부터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그 스랍 중의 하나가 제단의 숯을 “내 입술에 대며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고 합니다(8절). 제단 숯은 죄지은 인간이 용서받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수많은 짐승의 피를 흘린 후에 받쳤던 곳입니다. 그 제단의 숯을 이사야 입술에 대며 죄악이 사하여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해지려면 반드시 죄사함을 먼저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께 죄사함을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깨달을수록 더 거룩하게 살 수 있습니다. 설사 우리가 죄사함을 받아도 그 은혜의 크기를 모르면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께 죄사함을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알고 더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 이사야가 주의 성전에서 용서받은 후에 깨달은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이 부르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사야는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합니다(8절). 우리가 주께 용서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알수록 하나님이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용서받은 은혜를 모르면 주님이 부르시는 음성을 들어도 외면하게 됩니다. 저도 처음에 하나님이 목회자로 부르시는 음성을 들었을 때 집안의 장남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다른 사람이 목회자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 사정보다 주님의 용서하신 은혜가 더 커서 목회자로 부르신 것을 순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음성을 들었을 때 내 사정보다 주께 용서받은 은혜가 더 커서 외면하지 않고 순종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도망치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이사야가 처음 부르심을 받았을 때는 망각한 채로 살았습니다. 만약 그가 처음 부르심에 순종했다면 나단 선지가가 다윗 왕을 책망하여 영적으로 바르게 세웠던 것처럼, 이사야 선지자가 웃시야 왕을 책망하여 영적으로 바르게 세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주의 부르심을 외면하고 불순종하면 영적으로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사야가 다시 부르심을 받았을 때 도망치지 않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합니다(8절). 선지자로 다시 부르심을 받았을 때 처음처럼 주의 사명을 망각하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그 증거로 앗수르 대군이 침입했을 때 “히스기야 왕이 선지자 이사야와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다”고 합니다(대하32:20).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 왕을 기도의 사람으로 세워서 앗수르의 십팔만오천명의 대군을 물리쳤습니다(사37:36). 오늘날도 성도가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기도하지 않고는 주의 사명을 감당할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외면하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기도함으로 주님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를 소망합니다.
□ 말씀 다지기 (함께 되새김질 하는 시간입니다.)
1. 하나님이 웃이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를 부르신 이유는 무엇인가요?(1절)
2. 이사야가 성전에서 보았던 스랍의 여섯 날개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요?(2절)
3.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요?(5절)
4. 이사야가 다시 사명을 회복하고 어떻게 변화되었나요?(대하32:20)
□ 말씀 적용하기 (서로 삶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1. 우리의 신앙에서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던 웃시야는 무엇이 있었나요?
2. 우리가 교회에 왔을 때 주의 옷자락으로 감싸주었던 체험은 무엇이 있나요?
3.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가장 죄인이라고 느겼던 계기는 무엇이 있나요?
4. 하나님이 부르실 때 ‘내가 여기있나이다’라고 순종했던 일은 무엇이 있나요?
□ 기도하기
사랑의 주님!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웃시야 왕이 죽어서 다시 하나님을 찾아서 자신의 사명을 회복하며, 스랍의 여섯 날개를 보면서 자신의 죄악을 가리고 순종의 날개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소서. 우리가 예배하면서 거룩한 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추구하여 주님의 영광이 충만하며,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닫고 거룩한 길로 나아가며, 주께 용서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알고 더 거룩하게 살아가게 하소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음성을 들었을 때 내 사정보다 주께 용서받은 은혜가 더 커서 외면하지 않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외면하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기도함으로 주님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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