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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셋째주 목장교제 입니다. "어떻게 간극을 줄일 수 있는가?" 예레미야 28장 12 ~ 17절
황승재 2022-10-18 추천 0 댓글 0 조회 807

어떻게 간극을 줄일 수 있는가?

예레미야 2812-17/ 어디든지 예수 나를 이끌면(440) 

 

들어가는 말

우리는 하나님께 내 상황 앞에서 듣고 싶은 응답이 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듣고 순종해야 하는 들어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간극이 점점 커질수록 신앙생활을 머뭇거리게 되며 주저앉게 되며 도태되기도 합니다. 말씀을 통해 어떻게 하면 이 간극을 줄일 수 있는지 알아가길 소망합니다.

 

1.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275절에서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이 땅을 맡기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6절에서 바로 그 사람이 나의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 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도 12절에 바벨론 왕의 멍에를 목에 메고 그와 그의 백성을 섬기소서 그리하면 사시리라라고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유다는 바벨론에게 포로생활을 해야 하고 그 연한이 다 차면 내가 너희를 회복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냐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곧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어 버리고 3절에 느부갓네살이 이 곳에서 빼앗아 바벨론으로 옮겨 간 여호와의 성전 모든 기구를 이 년 안에 다시 이 곳으로 되돌려 오리라라고 하셨다고 예언합니다. 분명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하는 예언은 거짓이라고 했는데 하나냐는 구체적인 날까지 언급하며 회복의 예언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과 시드기야 왕에게는 하나냐의 예언이 더 달콤한 예언입니다. 백성들의 눈에는 둘 다 예언자이기 때문에 해피엔딩을 들려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더 주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하나냐가 참 예언자처럼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에게는 이와 함께 예언의 신뢰에 대한 판단이 근거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1절입니다. 하나냐는 기브온 앗술의 아들이라고 안내합니다. 기브온은 예루살렘에서 8키로 정도 떨어진 가까운 곳입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베냐민 지파 중 레위인들이 사람들이 살던 곳이 기브온입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냐와 반대의 예언을 하는 예레미야는 11절을 보면 베냐민 땅 아나돗 마을의 제사장 출신인 힐기야의 아들이라고 안내합니다. 같은 베냐민 땅이지만 아나돗은 솔로몬에게 쫓겨난 아비아달의 후손들이 모여살던 땅입니다. , 하나냐는 좋은 가문과 혈통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예언자 이며, 예레미야는 몰락한 가문의 예언자였던 것입니다. 가문의 배경 차이를 알고 있는 왕과 백성들에게는 성공한 가문과 힘이 있는 가문의 사람의 외치는 예언이 더 힘있게 다가온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며 살아갑니다. 그때 우리에게 요구되는 믿음의 태도는 바른 뜻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이 세워져 있는가 입니다. 내 귀를 즐겁게 하고 듣고 싶은 말을 해 주는 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하나냐의 거짓 예언에 넘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바른 기준을 따라가면 도리어 아프고 듣고 싶지 않는 말씀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의 바른 기준 중 하나는 지금 내게 익숙함과 편안함에 대해 제시하는 불편함일 수 있습니다. 편안함과 익숙함으로 반응하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을 거부하여 만나는 불편함. 우리에게 많은 기준 중 이 기준 하나만 바르게 세워도 하나님의 바른 뜻을 옳게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예레미야가 참 예언자인 이유는?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가 참 예언자인 근거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참 예언자는 말씀이 그 입에 머금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참 예언자로 부르시고 그 표증을 심어 주셨습니다. 19절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하나님의 말을 예레미야의 입에 두신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그 말을 그 입에 넣어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인기를 끄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입에 머금어진 말씀만 전해야 하는 사명을 부여받았기 때문입니다. , 말씀대로라는 삶이 분명한 기준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이 우리 삶의 듣고 싶음과 들어야 함의 간극을 줄이는 것입니다. 소망하기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말씀을 입에 넣어주심을 소망하고 그 말씀대로 반응하고 살아가는 삶이 되길 원합니다.

둘째로 참 예언자는 하나님께 타이밍이 맞춰져 있습니다. 하나냐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이 유다의 회복의 타이밍을 정합니다. 2년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멍에를 꺾어 버리신다고 선포합니다. 이 예언을 들은 예레미야가 6절에 하나님께서 당신이 예언한 대로만 해주면 얼마나 좋겠냐고 합니다.” 그러면서 9절에 참 예언자는 그 예언이 성취되어야 참 예언자로 인정받는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는 10절에 예레미야의 목의 멍에를 스스로 꺾어 버립니다. 본인이 회복의 시간도 정하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꺾으실 멍에도 스스로가 정해서 꺾어 버리는 것입니다. 스스로 모든 것을 다 정하고 결정합니다.

하나냐의 우발적인 행동에 예레미야는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예레미야는 11절에 아무말 없이 자기의 길을 갑니다라고 기록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냐를 향한 말씀을 그의 입에 넣어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자 이전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입니다. 하나냐 앞에 서서 무섭게 거짓예언자의 태도를 지적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진노로 그가 곧 죽을 것이라 예언합니다. 예레미야는 한번도 자신이 타이밍을 정하거나 결정한 적이 없습니다. 또한 감정에 따라 입을 여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주님의 말씀이 임할 때 움직였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타이밍에 따라 움직이는 삶 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타이밍에 따라 반응하는 온전한 순종의 열매를 맺길 소망합니다.

 

3. 물 맞음이 되시는 하나님

그런데 예레미야의 이 모든 결정과 행동함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생겼습니다. 그는 이런 외침을 하면서 두렵거나 무섭거나 피하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물음입니다. 예레미야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습니다. 부르심 앞에 6절에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라고 합니다. 감당할 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겁도 많고 말도 어눌해서 이런 일에 적합하지 않은 자라고 피하는 것입니다. 그런 성품을 가진 그가 너희가 다 망할 것이고 바벨론의 오랜 포로 생활을 해야 한다는 비관적인 선언을 해야 하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 예언으로 인해 322절을 보면 예레미야는 유다의 왕의 궁중에 있는 시위대 뜰에 갇혔으니라고 합니다. 바른 예언을 하였다는 이유로 옥살이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386절을 보면 그 물웅덩이 속에는 물은 없고, 진흙만 있어서, 예레미야는 진흙 속에 빠져 있었다.”라고 합니다.

그도 사람인에 그 시간들 가운데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으니 이 정도 괴로움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아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도 삶의 바로 앞까지 찾아온 죽음의 위협에 무섭고 두렵고 후회스러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그 사명을 감당합니다. 무엇이 그를 일어나게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신 뒤 삶의 모든 상황 가운데 물 마중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물 마중은 제주 해녀들의 용어입니다. 해녀가 바다에서 5시간 넘게 해산물을 채취하고 뭍으로 돌아올 때 마중하는 이를 일컫는 말입니다. 하나님도 예레미야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무작정 그에게 사명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18절에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가 두려울 때 마다 물 마중이 되어주십니다. 바로 말씀대로 되어짐 이라는 물 마중을 통해서 말입니다. “너는 틀리지 않았어. 그리고 너를 구원한다고 했던 그 약속을 나는 잊지않고 있어.”하시며 지친 그를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맞어. 말씀대로 사는 삶이 결코 틀리지 않았어.”라는 사실을 응답이라는 구원으로 그 간극을 줄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다보면 만나는 현실의 두려움과 무서움과 억울함과 참담함이 분명 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예레미야와 같은 처지가 우리 삶에 찾아왔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소망하기는 주님의 이 물 마중의 위로의 선물이 여전히 믿음과 삶을 살아내는 실력의 차이로 갈등하고 있는 여러분에게 확신과 도전이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말씀 다지기 (함께 되새김질 하는 시간입니다.)

1. 바벨론으로 인한 위한 상황 앞에서 예레미야와 하나냐의 선포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2. 예레미야가 하나냐와 달리 참 예언자인 근거는 무엇이가요?(두 가지)

 

3.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자신은 아이라 하며 두려워 할 때 주신 약속은 

   무엇인가요?(8)

 

말씀 적용하기 (서로 삶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1. 우리가 말씀의 바른 뜻을 분별하기 위해 달콤함과 세상기준이 아닌 말씀을 

    기준으로 삼았던 경험은 무엇이 있나요?

 

2. 우리가 말씀을 입에 넣어주시는 하나님의 타이밍에 따라 누린 은혜는 

   무엇이 있나요?

 

3. 우리에게 영적 물마중이 되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된 

   경험은 무엇이 있나요?

 

 

기도하기

은총의 주님 우리가 바른 뜻을 분별할 수 있는 믿음의 기준이 곧게 세워지길 원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세워주시는 타이밍에 삶을 맞추어 복을 누리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여전히 믿음과 삶이라는 간극 속에서 여전히 입에 넣어주신 말씀대로 사는 것이 맞나 하며 불안해하고 의심하는 우리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에게 물 마중이 되어 주셔서 위로하시며 입에 넣어준 그 말씀대로 사는 내 삶이 틀리지 않았어.”라고 증명해 주시며 위로해 주시는 주님을 붙잡습니다. 그리고 결국 말씀대로 사는 삶이 형통이며 옳음이었음을 들려주는 말씀을 기억하며 살계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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