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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둘째주 목장교재입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못한 결과는?" 마태복음 18장 21 – 35절
조영식 2022-09-11 추천 0 댓글 0 조회 892

우리가 용서하지 못한 결과는?

마태복음 1821-35/ 내 주의 보혈은(254) 

 

21.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23.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26.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32.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34.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35.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0. 들어가는 글

오늘은 9월 둘째 주일입니다. 또한 추석 연휴를 보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율법에는 111일을 대속죄일로 지켰습니다(16:34). 예전에는 왜 대속죄일을 111일에 지키는지 궁금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십일 동안 먼저 사람들에게 용서를 받은 후에, 십일째 되는 날에 하나님께 모든 용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사람에게 용서받은 후에 하나님께 용서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형제에게 용서를 구했는데 용서받지 못하면 하나님께도 용서받을 수 없느냐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에 율법의 랍비들은 형제에게 용서받지 못해도 세 번의 용서를 구했으면 대속죄일에 참여하여 하나님께는 용서받을 수 있다는 조항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율법에서 세 번까지인데 자신이 일곱 번을 대답하면 주님께 큰 칭찬을 받을 줄 알았습니다(21). 그러나 주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고 합니다(22). 그리고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를 통하여 왜 우리가 용서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비유를 통하여 우리가 왜 용서해야 하는지를 깨닫고 각자의 삶에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첫째 단락에서 주인이 종의 만 달란트를 탕감해 준 비유의 의미는 무엇입니까우리가 주님을 처음 만나서 어떻게 큰 사랑을 받았는지 전해줍니다(23~27).

첫째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입니다. 주인이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라고 합니다(24). 주인(임금)과 종의 관계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또한 만 달란트를 빚졌다는 것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액수를 의미합니다. 한 달란트는 일일 품삯으로 받는 한 데나리온의 육천배 정도 된다고 합니다. 당시에 유대 전역에서 일년 동안 거두어드린 세금이 800달란트였다고 합니다. 오늘날 금액으로 만 달란트를 환산하며 10억 달러 정도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환율로 137천억이 넘어갑니다. 그러므로 만 달란트의 빚진 자의 의미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 됨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 됨을 인정함으로 주님의 큰 사랑을 체험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주인에게 만 달란트를 빚진 종은 갚을 것이 없는지라고 합니다(25). 그러나 그 종은 다 갚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고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함으로 악한 종이 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줍니다(26,32). 그러므로 악한 종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만 달란트를 다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해야 합니다. 만약 종이 주인에게 만 달란트를 다 갚을 수 없다는 고백을 한다면, 어떤 노력을 해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가난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노력을 해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아서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 용서받았습니다.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27). 원래 긍휼히 여기다의 헬라어 스플랑크조마이는 창자가 뒤틀리고 끊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만큼 이웃의 아픔에 함께 참여하여 공감한다는 의미입니다. 주인은 종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두 가지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하나는 옥에 가두지 않고 놓아 보내며자유를 주었습니다(27). 또 하나는 모든 빚을 탕감하여용서해준 것입니다(27). 주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얼마나 큰 사랑을 베풀었는지 가슴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이 베풀어주신 사랑을 깨달을 때 악한 종이 아니라 충성된 종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불쌍히 여김으로 베풀어주신 사랑의 크심을 깨닫고 악한 종이 아니라 충성된 종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 둘째 단락에서 종이 동료에게 백 데라리온의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둔 비유의 의미는 무엇입니까우리가 주님을 만나서 용서받은 후에 어떻게 동료들과 살아야 하는지를 전해줍니다(28~30).

첫째로 종이 동료에게 무자비한 성품을 보여줌으로 악한 종이 되었습니다. 그 종이 나가서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고 합니다(28). 여기서 종과 백 데나리온 빚진 자는 동료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주인보다 더 심한 주인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종이 백 데나리온 빚진 자의 목을 잡고있습니다. 여기서 목을 잡는다는 것은 동료에게 수치와 모욕을 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주인에게 큰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동료에게는 작은 사랑조차도 나누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는 동료에게 수치와 모욕을 주는 무자비한 성품으로 악한 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는지를 깨닫고 동료에게 작은 사랑이라도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종이 받은 은혜를 동료에게는 허락하지 않음으로 악한 종이 되었습니다.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는 책임질 수 있는 말입니다(29). 한 데나리온은 하루의 품삯이기 때문에 백 데나리온은 백일 정도 일하면 갚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탕감받은 종은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었다고 합니다(30). 당시에 가장 헐값의 노예가 오백 데나리온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일백 데나리온 빚 진자를 옥에 가두는 것은 불법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주인에게 도저히 값을 수 없는 은혜를 허락받았습니다. 그러나 주인께 허락받은 은혜가 동료에게 흘러가는 통로가 완전히 막혀있기 때문에 악한 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허락받은 은혜를 받았으면 막혀있지 않고 동료에게 아낌없이 흘려보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 셋째 단락은 주인이 악한 종을 불러 그 빚을 다 갚도록 옥졸에게 넘긴 비유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주님께 받은 사랑을 동료들과 어떻게 나누었는지로 최종 심판이 있음을 전해줍니다(31~35).

첫째로 처음 부름에는 용서를 받았지만, 두 번째 부름에는 심판으로 바뀌었습니다. 주변의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렸습니다(31). 주인이 그를 다시 불러서 악한 종이라고 심판했습니다(32). 여기서 악한은 유죄를 선고한 것입니다. 이 한마디의 판결로 지금까지 베풀어준 모든 은혜를 상실하게 됩니다. 주인이 처음 부름에는 용서했지만, 두 번째 부름에서 심판으로 바뀐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인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은 종이 동료를 불쌍히 여겨야 하는 마땅한 의무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33). 우리가 마땅히 할 것을 하는 것으로 칭찬을 기대해도 안 되고, 또한 마땅히 할 것을 하지 않고서 핑계를 찾아도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므로 용서받았다면 동료를 불쌍히 여김으로 용서하는 것이 마땅한 의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처음 붙잡은 죄명은 만 달란트 빚이지만, 두 번째 붙잡은 죄명은 용서하지 않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오늘 비유의 결론은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입니다(35).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주님께 은혜받은 것을 기억해야만 형제를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의 마음에 기억해야 할 은혜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놓임받은 자유와 탕감받은 용서의 은혜입니다(27). 우리가 형제를 용서할 때 진짜로 놓임받은 자유와 탕감받은 용서가 내 것으로 되는 것입니다. 주인이 처음에 붙잡은 죄명은 만 달란트 빚이지만, 두 번째 붙잡은 죄명은 형제를 용서하지 않는 것으로 바뀐 것입니다. 주님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만 달란트 빚은 쿨하게 탕감해 주는데,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함으로 놓임받은 자유와 탕감받은 용서의 은혜가 내 것으로 되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말씀 다지기 (함께 되새김질 하는 시간입니다.)

1. 주인이 종의 만 달란트를 탕감해 준 것의 세 가지 의미는 

   무엇인가요?(24,25,27)

 

2. 종이 동료에게 백 데나리온의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둔 것의 두 가지 

   의미는 무엇인가요?(28,30)

 

3. 주인이 종과 두 번째 만남에서 용서가 심판으로 바뀐 이유는 무엇인가요?(33)

 

4. 종이 주인과 두 번째 만남에서 죄명이 어떻게 달라졌나요?(35)

 

말씀 적용하기 (서로 삶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1. 우리는 언제 어떤 노력을 해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을 깨달았나요?

 

2. 주님께 용서받았음을 알고도 이웃을 용서하지 못한 일은 무엇이 있나요?

 

3. 우리가 주님 앞에서 마땅한 의무인데 칭찬을 기대했던 일은 무엇이 있나요?

 

4. 우리가 놓임받은 자유와 탕감 받은 용서를 얼마만큼 감사하고 있나요?

 

기도하기

사랑의 주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 됨을 인정하며, 어떤 노력을 해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으며, 주님이 불쌍히 여김으로 베풀어주신 사랑의 크심을 깨닫고 악한 종이 아니라 충성된 종이 되게 하소서. 우리는 주님께 큰 사랑을 받았음을 깨닫고 동료에게 작은 사랑이라도 나누며, 하나님께 허락받은 은혜를 동료에게 아낌없이 흘려보내게 하소서. 우리가 주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아서 용서받았다면 동료를 불쌍히 여김으로 용서하는 것이 마땅한 의무가 되며,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함으로 놓임받은 자유와 탕감받은 용서의 은혜가 내 것으로 되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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