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서 4장 1-4절 / 이 세상 험하고(263장)
1.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2.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3.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4.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0. 들어가는 글
오늘은 8월 세 번째 주일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역을 했던 인물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나 선지자라고 생각합니다. 예레미야와 에스겔 같은 대단한 선지자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선포했지만, 전혀 반응이 없어서 생명이 없는 돌들에게 외치는 소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나 선지자는 니느웨에 가서 그들에게 주님의 심판을 선포했을 때, 니느웨 백성들이 즉시 ‘악한 길에서 돌이켜’ 회개했습니다(3:10). 그가 전한 말씀을 듣고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했으면 선지자로서 사명을 잘 감당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요나는 “매우 싫어하고 성내는” 반응을 보였습니다(1절).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요나가 과연 하나님께 성내는 것이 옳은지를 깨닫고,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요나의 원하던 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니느웨로 가지 않고 도망쳤던 이유는 자신의 민족에게 고통을 주었던 니느웨가 멸망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또한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나와 니느웨로 갔던 이유도 그 도시가 멸망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니느웨가 멸망하지 않음으로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라고 합니다(1절). 원문에는 ‘매우 싫어하고’가 ‘큰 악’으로 나옵니다. 요나는 니느웨을 심판하지 않는 하나님이 큰 악을 저질렀다고 매우 싫어하고 성내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큰 악을 저질렀다고 정죄하며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죄악의 도성 니느웨를 심판함으로 응보적 정의를 실현하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요나처럼 내가 원하는 대로만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신앙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만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요나가 거짓 선지자가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니느웨로 가서 날짜까지 못박아 니느웨의 몰락을 선포했지만, 하나님이 니느웨의 심판을 취소하여 멸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3:4). 결국 요나가 선포했던 말씀이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명기 기준으로 하면 거짓 선지자로 인정받습니다. 선지자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했을 때 그대로 되면 참 예언자가 되지만, 그대로 되지 않으면 거짓 예언자가 되기 때문입니다(신18:22). 신명기 교리를 따랐던 요나는 선포한 말씀이 그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거짓 선지자가 되었다는 감정에 불같은 화를 냈습니다. 요나는 말씀의 성취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참 선지자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 더 괴로웠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요나처럼 머리로는 주님의 말씀이 우선인데, 내 감정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을 더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우리는 사람에게 인정받는 감정보다 오직 주의 말씀을 성취하는 것이 더 우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요나가 성내며 여호와의 신앙신조로 기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요나가 도망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변명합니다. 요나는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다”라는 여호와의 신앙신조로 기도합니다(2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신앙신조를 고백할 때 최고의 신앙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다시스로 도망친 이유에 대하여 신앙신조를 이용하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라고 변명합니다(2절). 요나가 신앙 신조의 말씀을 이용하여 변명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도망쳤던 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경우라도 자신의 죄를 둘러대기 위해 주님의 말씀을 변명거리로 이용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으로 내 죄를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회개하여 용서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요나는 하나님을 변덕스럽다고 비난합니다. 그는 여호와의 신앙신조를 이용하여 이미 예상했던 대로 하나님이 뜻을 돌이킬 줄 알았기 때문에 니느웨에 심판을 내리려다가 자의적으로 취소한 변덕스러움을 비난합니다(2절). 그러나 요나의 생각처럼 구약성경 어디에도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셔서’ 징벌을 선언했다가 자의적으로 취소하는 변덕스러운 하나님은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심판을 취소한 이유는 니느웨의 왕으로부터 모든 백성이 악한 길에서 돌이켜 회개하였기 때문입니다(3:10). 그러나 요나는 신명기 교리에 갇혀 여호와가 응보적 정의를 실현하지 않는다고 변덕스러운 하나님으로 비난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반쪽자리 하나님으로 가두고, 나머지 반쪽자리 하나님은 잘못되었다고 비난하는 모습은 없습니까? 하나님은 응보적 정의를 실현하는 하나님도 되지만,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를 용서하는 하나님도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응보적 정의로 심판하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사랑으로 용서하시는 하나님도 함께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 요나가 하나님보다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첫째로 요나가 응보적 정의를 최고의 신념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를 행한 만큼 징벌로 보응하는 정의로운 주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 때문에 악한 도성 니느웨의 심판이 취소되어 응보적 정의가 무너졌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라도 응보적 정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3절). 왜 요나는 응보적 정의에 생명까지 걸었을까요? 그의 신앙이 신념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종교가 정치적인 것과 결합되면 신념으로 변질되는 것입니다. 요나처럼 자기 확신에 빠진 신념은 하나님까지 대적합니다. 응보적 정의를 최고의 신념으로 삼은 요나는 니느웨를 심판하지 않는 하나님까지 큰 악을 행한다고 판단합니다(1절). 종교와 정치가 결합된 신념이 무서운 이유는 그 신념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신념으로 변질되지 않기 위해 정치적인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요나가 회개하면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요나 시대에 신명기 교리가 이스라엘 신앙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신명기 교리는 인간이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이 합당한 심판을 내리는 응보적 정의를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죄를 범한 인간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심판을 취소하는 것이 신명기 교리에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신명기 교리에 갇혀 있으면 인간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이 뜻과 계획을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조차 못하는 것입니다. 요나도 신명기 교리에 갇혀 응보적 정의의 하나님만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니느웨 백성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서 회개했을 때 하나님도 뜻을 돌이켜 니느웨를 용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3:10). 요나서는 우리가 돌이켜 회개하면 사랑으로 용서하는 하나님도 존재함을 전해줍니다. 오늘날도 죄악의 길에서 돌이켜 회개하면 당신의 뜻을 돌이켜 죄악을 용서하는 사랑의 주님을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요나에게 응보적 정의가 무너졌다고 성내는 것에 대하여 ‘옳으냐’고 묻는 이유는 무엇입니까?(4절). 하나님은 요나에게 옳으냐를 결정하는 기준은 피조물의 사람이 아니라 창조주의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응보적 정의의 하나님만 옳은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용서하시는 하나님도 옳다는 것입니다. 요나 선지자는 고난받는 욥과 대조를 이룹니다. 하나님은 욥이 그토록 알기 원했던 고난받는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폭풍우 가운데에서 들려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욥이 입을 가렸습니다(욥40:4). 그 이유는 욥에게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며, 하나님 앞에서 욥은 티끌 같은 피조물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욥이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를 통해 깨달은 것은 무엇입니까? 전심으로 회개할 때 창조주 하나님을 옳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은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욥42:6). 그러나 요나처럼 내가 옳다는 신념에 갇히면 회개할 수 없어 주님의 옳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욥처럼 전심으로 회개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는 믿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말씀 다지기 (함께 되새김질 하는 시간입니다.)
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는 두 가지 이유는 무엇입니까?(1절)
2. 요나가 여호와의 신앙신조를 이용하여 합리화 시키는 두 가지는 무엇입니까?(2절)
3. 요나의 응보적 정의가 신념으로 변질된 이유는 무엇입니까?(3절)
4. 하나님이 요나에게 성내는 것이 옳으냐고 묻는 이유는 무엇입니까?(4절)
□ 말씀 적용하기 (서로 삶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1.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주님께 섭섭했던 마음은 무엇이 있나요?
2.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자신을 합리화 시켰던 경험은 무엇이 있나요?
3. 우리도 신앙의 교리에 갇혀 반쪽짜리의 주님을 믿었던 실수는 무엇이 있나요?
4. 우리가 아니라 주님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기 위해 회개할 것은 무엇이 있나요?
□ 기도하기
사랑의 주님! 우리가 원하는 대로만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사람에게 인정받는 감정보다 오직 주의 말씀을 성취하는 것이 더 우선되게 하소서. 우리는 주님의 말씀으로 내 죄악을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회개하여 용서받으며, 응보적 정의로 심판하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사랑으로 용서하는 하나님도 함께 만나게 하소서. 우리의 신앙이 신념이 되지 않기 위해 정치적인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죄악의 길에게 돌이켜 회개하면 당신의 뜻을 돌이켜 죄악을 용서하는 사랑의 주님을 만나며, 요나처럼 자신의 신념만 옳은 것이 아니라 욥처럼 회개하여 창조주의 말씀이 옳은 것을 인정하는 믿음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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