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30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진정한 기도는 무엇인가?
설교 본문 : 시편 143편 1- 12절
1.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 2.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하지 마소서 주의 눈 앞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3.원수가 내 영혼을 핍박하며 내 생명을 땅에 엎어서 나로 죽은 지 오랜 자 같이 나를 암흑 속에 두었나이다/ 4.그러므로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 5.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읊조리며 주의 손이 행하는 일을 생각하고/ 6.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셀라)/ 7.여호와여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이 피곤하니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을까 두려워하나이다/ 8.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9.여호와여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건지소서 내가 주께 피하여 숨었나이다/ 10.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주의 영은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 11.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살리시고 주의 의로 내 영혼을 환난에서 끌어내소서/ 12.주의 인자하심으로 나의 원수들을 끊으시고 내 영혼을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멸하소서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
0. 들어가는 글
10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오늘은 종교 개혁 주일입니다.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한지 내년이면 500주년입니다. 고인 물은 썩듯이 이 땅에 교회들은 끊임없이 새롭게 개혁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먼저 교회가 새롭게 개혁되어야 나라도 새롭게 개혁될 수 있습니다. 지난주 강남 아주머니가 대통령을 꼭두각시처럼 조정했다는 사건이 폭로되어서 나라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저는 대통령을 조정했다는 강남 아주머니가 영생교를 만든 사이비 교주의 딸이며, 후계자라는 것에 더 비참했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사이비 종교의 입김에 놀아났다는 것입니다. 이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는 세월호 사건의 배후에도 구원파라는 이단이 개입했는데, 연이어서 우리나라를 이단과 사이비 종교가 흔들고 있습니다. 이단과 사이비 종교들이 나라를 흔드는 시대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의 다윗처럼 깨어서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먼저 교회가 바로서고 나라도 바로서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깨닫고 우리들의 삶에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무엇을 사모하는가?
시편을 묵상할 때는 시인이 시를 기록한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143편은 다윗이 노년에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왕궁을 버리고 도피 생활을 하던 시절에 절박한 심정으로 주님께 드린 기도의 시입니다. 다윗이 젊은 시절에 사울 왕의 핍박으로 도망칠 때도 힘들었지만, 노년에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도망칠 때는 더욱 더 힘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몸이 늙은 것도 있지만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겠다는 것이 그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들의 반란으로 다윗의 비참한 심정을 “나로 죽은 지 오랜 자 같이 나를 암흑 속에 두었나이다. 그러므로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라고 합니다(3,4절). 다윗은 마음의 참담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우리들이 다윗의 입장이라면 먼저 고난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라고 기도합니다(6절). 그는 마른 땅이 비를 갈망하듯이 가장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모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응답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모하는 마음을 드렸습니다. 우리들이 다윗처럼 하나님을 가장 사모할 때 오히려 고난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응답과 하나님 중에서 어느 것을 더 사모합니까? 우리들이 하나님의 응답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모하여 주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움으로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한국 교회가 하나님의 응답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모하여 새롭게 개혁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무엇이 하나님을 사모하는 기도입니까?
우리들은 하나님을 사모하는 기도를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일반적인 기도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많이 응답 받는 것을 축복이라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축복을 많이 받기 위해 교회를 다니기도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사모하는 기도를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라고 합니다(8절). 그는 하나님께 받는 기도가 아니라 드리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받기 위해서만 기도합니다. 그러나 진정 주님을 사모하는 기도는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한국 교회가 개혁되기 위해서는 받는 기도에서 드리는 기도로 성숙해져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께 드릴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첫째는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 됩니다(10절).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는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수가 없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지 않는다면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라는 것은 모순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아야만 주님의 뜻을 행할 수가 있습니다.
최근에 집에서 가출한 청소년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대화 도중에 ‘부모가 너에게 어떻게 해주면 좋겠니?’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은 조금도 주저 없이 “부모가 간섭하지 말고 용돈만 많이 주면 좋겠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 대답이 청소년의 전부는 아니었겠지만, “도대체 부모의 역할의 무엇일까?”에 대해 살짝 고민한 적이 있었습니다. 청소년이 아직 철이 없어서 그랬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도 철이 없는 신앙이 많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받을 줄만 알았지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가 세상의 조롱과 비방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영성이 다시 회복되기 위해서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를 통하여 가르침을 받아서 주님의 뜻을 행해야 합니다(8절).
3. 무엇이 주님의 뜻을 행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서 주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난해에 제가 우회전 하면서 택시와 접촉 사고가 난적이 있었습니다. 저처럼 교통사고가 나면 어느 쪽이 더 잘못했는지 과실 비율을 따지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도 문제가 생기면 누가 더 잘못했는지 과실 비율을 따지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과실보다도 상대방의 과실에 더 비중을 두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변명을 합니다. 어린 아이들까지도 서로 다투고 나면 누구 더 잘못했는지를 따지면서 자신들의 억울함을 풀고자 합니다. 우리나라의 정치도 서로의 과실 비율만 따지면서 책임을 전가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다윗의 기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얼마든지 과실 비율을 따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보다도 압살롬의 죄가 더 크다는 것을 드러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하지 마소서 주의 눈 앞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라고 회개합니다(2절).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합니다(롬3:23). 세상은 모든 일에 과실 비율을 따지면서 조금이나마 더 의롭다는 것을 인정받지 못하면 억울하고 속상한 것이 상처로 남습니다. 그러나 다윗과 바울처럼 신앙이 성숙할수록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의로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처럼 죄인이라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다윗이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았으면 압살롬을 비난하면서 자신은 더 의롭다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압살롬보다 더 의로운 것이 아니라 모두가 죄인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모두가 죄인 됨을 바라 볼 때 서로를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방보다 조금이라도 더 의롭다고 생각할 때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도 죄인이고 나도 죄인이면 용서의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다윗은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을 보았을 때 반란을 일으킨 압살롬을 용서하며 살리고자 하였습니다(삼하18:12). 바울도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자신의 핍박하는 유대인들을 용서하고 그들이 구원받기를 기도하였습니다(롬9:3). 이처럼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용서하는 믿음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다른 목회자들보다 더 의로운 목회자가 되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시설에 잘못된 목회자를 보면 분노를 느끼면서 비난을 했습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 눈에 의로운 목회자로 보이려고 할수록 하나님 눈에는 죄인된 목회자가 되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 눈에 의로운 인생이 하나님도 없다는 것을 공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기에 예수님의 보혈의 용서가 모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저도 죄인이라는 것을 느낄수록 사람들을 용서하기가 조금은 수월해졌습니다. 우리 모두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서로 용서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의 주님! 하나님의 응답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모하게 하시며, 하나님께 받는 기도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드리는 기도를 하게 하시며,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사 아침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인도함을 받게 하시며, 하나님의 눈에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음을 알고 서로 용서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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