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16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진정한 충성은 무엇인가?
설교 본문 : 창세기 24장 40-49절
40.주인이 내게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그의 사자를 너와 함께 보내어 네게 평탄한 길을 주시리니 너는 내 족속 중 내 아버지 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 것이니라/ 41.네가 내 족속에게 이를 때에는 네가 내 맹세와 상관이 없으리라 만일 그들이 네게 주지 아니할지라도 네가 내 맹세와 상관이 없으리라 하시기로/ 42.내가 오늘 우물에 이르러 말하기를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만일 내가 행하는 길에 형통함을 주실진대/ 43.내가 이 우물 곁에 서 있다가 젊은 여자가 물을 길으러 오거든 내가 그에게 청하기를 너는 물동이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게 하라 하여/ 44.그의 대답이 당신은 마시라 내가 또 당신의 낙타를 위하여도 길으리라 하면 그 여자는 여호와께서 내 주인의 아들을 위하여 정하여 주신 자가 되리이다 하며/ 45.내가 마음속으로 말하기를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와서 우물로 내려와 긷기로 내가 그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내게 마시게 하라 한즉/ 46.그가 급히 물동이를 어깨에서 내리며 이르되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기로 내가 마시매 그가 또 낙타에게도 마시게 한지라/ 47.내가 그에게 묻기를 네가 뉘 딸이냐 한즉 이르되 밀가가 나홀에게서 낳은 브두엘의 딸이라 하기로 내가 코걸이를 그 코에 꿰고 손목고리를 그 손에 끼우고/ 48.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 나의 주인의 동생의 딸을 그의 아들을 위하여 택하게 하셨으므로 내가 머리를 숙여 그에게 경배하고 찬송하였나이다/ 49.이제 당신들이 인자함과 진실함으로 내 주인을 대접하려거든 내게 알게 해 주시고 그렇지 아니할지라도 내게 알게 해 주셔서 내가 우로든지 좌로든지 행하게 하소서/
0. 들어가는 글
10월 셋째 주일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늙어서 자녀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이럴 경우 고대 풍습은 집안의 종들 중에서 가장 충성된 종을 양자로 입양하여 상속자가 되도록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다멕섹 사람 엘리에셀을 양자로 입양할 생각이었습니다(창15:2). 그러나 엘리에셀은 상속자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백세의 아브라함과 구십세의 사라 사이에서 불가능했던 아들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창21:3). 그리고 이삭이 장성하여 마흔이 되었지만 배우자가 없었습니다(창25:20). 아브라함은 늙은 종에게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고 청하였습니다(2,3,4절). 늙은 종은 젊은 시절에 아브라함의 양자가 될 수 있었지만 이삭이 태어남으로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상속자가 되지 못하게 했던 주인의 아들을 위해 아내를 구해주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40절). 성도님들이 엘리에셀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엘리에셀이 어떻게 충성했는지 깨닫고 우리들의 삶에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은 어떻게 충성했는가?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은 양자로 거론 될 때에 이름이 한 번 나왔지만 그 후로는 그의 이름이 불리지 않았습니다(창15:2). 아브라함이 그에게 아들 이삭의 아내를 택하라고 할 때도 사십년 넘게 세월이 흘러서 ‘종’ 앞에 ‘늙은’이라고 수식어가 붙었지만 여전히 그의 이름은 불리지 않는 무명의 종이었습니다(2절). 그러나 그는 세월이 흘러서 강산은 변할지라도 주인을 향한 충성심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엘리에셀이 변함없이 충성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가 모든 일에 간절히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부탁을 받고 나홀의 성에 이르렀습니다(10절). 그리고 제일 먼저 하나님께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라고 기도했습니다(12절). 그는 모든 상황 속에서 주님께 쉬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그가 리브가를 만나서 아브라함의 동생 집에 도착했을 때도 “이에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며” 기도하였습니다(26,48절). 그는 모든 일을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끝내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을 위해서는 상속자로 높여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지만 주인이 맡긴 사명을 위해서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도합니까? 우리들도 자신의 만족이 아니라 주님의 사명을 위해서는 간절히 기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어떤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까?
엘리에셀은 하나님께서 길을 인도해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42절). 이처럼 하나님은 답이 아니라 길을 인도해주십니다. 왜 하나님은 답이 아니고 길을 인도하십니까? 수학 문제를 풀 때 답만 알면 다음에 그 문제를 풀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푸는 길을 알 때 답은 저절로 나오면서 다음에도 그 문제를 풀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인도 방법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인도 방법은 바른 길을 가는 것입니다(48절). 여기서 바른 길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길입니다. 그리고 바른 길의 반대가 잘못된 길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분별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른 길이 빠른 길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빠른 길을 추구했던 부작용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S전자가 타사와 경쟁에서 앞서기 위하여 빠르게 신제품을 시판했습니다. 그러나 제품은 우수한데 배터리의 결함이 발생했습니다. 그래도 전량 리콜 할 때까지는 제품이 우수하여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품의 결함을 찾기도 전에 너무 빠르게 리콜해서 다시 배터리가 폭발하여 판매를 중단했고, 주가도 폭락하여 막대한 손실을 입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시판에서 리콜까지 너무 빠르게 한 것이 문제였다고 합니다. 우리 경제도 빠르게 성장한 기업들이 부실 경영을 하여 위기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신앙조차도 빠르게 성장했다는 교회들이 문제가 발생하여 갈등과 분열이 생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빠른 길이 아니라 진심으로 바른 길을 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인도 방법은 사람들에게 끌려가지 않는 것입니다. 엘리에셀은 나홀 성의 우물가에서 리브가를 만났을 때도 적당히 타협하지 않았습니다(41절). 그는 하나님께 기도한대로 믿고 순종하였습니다(44절). 또한 리브가의 아버지와 오빠가 여러 가지 결혼 조건들을 제시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 비위를 맞추며 끌려가지 않았습니다(49절). 우리들이 사람들과 적당히 타협하고, 비위를 맞추며 끌려가면 하나님의 뜻이 변질됩니다. 오히려 엘리에셀이 타협도 않고, 비위도 맞추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였을 때 라반과 브두엘은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고 하면서 리브가를 데려가라고 합니다(50,51절). 이처럼 우리들도 사람들에게 끌려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선한 길로 인도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인도 방법은 동역자로 함께 하는 것입니다(40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사자를 엘리에셀에게 함께 보내시어 길을 인도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동역자로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양자가 되어서 상속자로 될 수 있었습니다(창15:2). 그러나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서 아들 이삭이 태어나서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개입하여 상속자가 되지 못한 것이 한평생 상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상속자가 되지 못했지만 동역자가 되어서 끝까지 충성을 다했습니다. 이처럼 어떤 조건에 따라서 흔들리지 않고 충성하는 것이 진짜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엘리에셀이 가인과 너무 대조를 이룹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을 때 가인이 아니라 아벨이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가인은 제사장이 되지 못한 분노를 참지 못하여 동생 아벨을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그리고 가인은 성을 쌓고 하나님을 떠나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가인처럼 어떤 위치가 되었느냐 보다는 엘리에셀처럼 어떻게 동역했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3. 하나님과 어떻게 동역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과 어떻게 동역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이 가인과 이스마엘과 에서처럼 상속자가 되지 못했다고 원망과 불평을 하면서 하나님을 등지는 불행한 인생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엘리에셀과 요나단처럼 상속자가 되지 못했을지라도 동역자가 되어서 끝까지 주님께 충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가롯 유다가 주님을 팔고 자살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유스도와 맛디아가 후보로 추천되어서 제비 뽑아 맛디아가 되었습니다(행1:26). 그러나 맛디아보다 뽑히진 못한 유스도가 주님의 선교 동역자로 더 사용되었습니다. 심지어 후보로도 오르지 못한 바울이 어떤 제자들보다도 예수님의 동역자가 되어서 가장 위대한 선교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상속자로 선택받지 못하여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살았지만 한 평생 종의 자리에서 변함없이 충성하며 동역자가 되었던 엘리에셀을 본받고 싶습니다. 저보고 이제는 교회 안에만 갇혀있지 말고 밖으로 나와서 활동 좀 하라고 합니다. 그래야만 노회와 총회에서 선택도 받고 이름도 낼 수 있지 않느냐고 합니다. 아직은 제가 부족하여 밖으로 나가서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목회 자리에서 주님의 충성된 동역자가 되면 하나님이 밖으로 저의 이름을 드러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밖으로 제 이름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변함없이 주님의 충성된 동역자가 되는 것을 최고의 은혜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우리들이 어떤 위치에 오르는 것보다도 주님의 충성된 동역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의 주님! 우리들이 자신의 만족이 아니라 주님이 맡긴 사명을 위해 충성하게 하시며, 빠른 길이 아니라 진심으로 바른 길을 가게 하시며, 사람들에게 끌려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선한 길로 인도받게 하시며, 어떤 위치에 오르는 것보다 주님의 충성된 동역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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