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17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어떤 사랑이 흐르는가?
설교 본문 : 요한복음 13장 1- 11절
1.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2.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3.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4.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6.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8.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9.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10.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0. 들어가는 글
7월 셋째 주일입니다. 지난주도 국내외적으로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습니다. 국내적으로는 사드 배치 확정 이후에 중국보다도 지역 주민을 설득하는 것이 더 어려운 문제가 되었습니다. 국제적으로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만큼 무슬림 무장단체의 끊임없는 테러로 인하여 프랑스 니스에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무력이 아니라 사랑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도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무력이 아니라 사랑을 택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이 어떤 사랑을 보여주는지 깨닫고 우리들의 삶에 실천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사랑과 배신 사이에서?
예수님은 사랑은 끝까지 변함이 없으신 사랑입니다(1절). 그러나 마귀는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습니다(2절).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어떤 것을 받아 들이냐?”에 따라서 사랑과 배신의 길이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가인과 동생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를 받았을 때 가인은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습니다(창4:5). 하나님은 가인에게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합니다(창4:7). 이처럼 죄가 마음의 문 앞에 기다리면서 언제든지 우리들이 원하면 들어오려고 엎드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다스려야 합니다. 가인은 문 앞에 엎드려 기다리는 죄를 다스리지 못함으로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창4:8).
마귀가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을지라도 그는 다스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고 처음 주신 선물은 다스리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라고 했습니다(창1:26). 여기서 다스린다는 것은 지배한다는 것이 아니라 관리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먼저 자신의 마음을 관리해야만 다른 것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다른 것을 다스리려고 한다면 그것은 상대방을 파괴함으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죄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사탄은 처음부터 유다의 마음속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마귀가 주는 생각을 유다가 받아들인 후에 들어왔습니다(27절). 그러므로 마귀가 주는 생각을 다스리면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와서 지배할 수 없습니다. 마귀가 주님을 팔려는 생각을 유다의 마음에 집어넣은 후에도 예수님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떡 한 조각을 적셔서 주는 성찬을 받을 때 유다는 회개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까지 숨기는 거짓을 범했습니다(26절). 그 후에 유다는 자신이 마음에 거짓의 아비 사탄을 영접하고 그의 다스림을 받았습니다(요8:44).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속에 “누구를 영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합니다(20절).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그분의 다스림을 받고, 사탄을 영접하면 그의 다스림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그분의 다스림을 받음으로 사랑을 행하는 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물처럼 흐르는 사랑이 있는가?
우리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어떤 사랑을 본받아야 합니까? 주님은 자신을 팔려는 제자가 있다고 해서 사랑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사랑은 사람들의 죄악들 때문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런 사랑으로 예수님은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었습니다(5절). 어느 날 묵상하는데 대야에 담긴 물의 의미가 저의 가슴에 흘러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물이 변화여 포도주가 된 물만이 아니라 제자들의 발을 씻는 물도 동일하게 소중하다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대야에 담겨서 제자들의 발을 씻는 물은 어떤 물인지 감동을 주시는 대로 묵상을 했습니다.
첫째로 대야의 물은 가장 더러운 발을 씻었습니다. 당시에 신발은 샌들처럼 생겨서 발에 먼지가 가득했습니다. 그러므로 집에 들어갈 때 반드시 물로 더러운 발을 씻어야 했습니다. 주님은 물로 더러운 발을 씻어 줌으로 사랑이란 상대방의 더러움을 씻어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주님의 사랑을 닮은 부모도 자녀들이 더렵혀지면 자신의 몸에 더러움이 묻을지라도 씻어주고 닦아줍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랑은 상대방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씻어주고 닦아주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서 이웃의 더러움을 씻어주고 닦아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대야의 물은 주님의 뜻대로 발을 씻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은 물 없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물은 생명입니다. 또한 물은 다양하게 사용되어서 가장 귀하게 먹는 생수부터 가장 천하게 걸레를 빠는 일까지 사용됩니다. 그러나 물은 어떤 일이라도 귀한 것과 천한 것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물은 창조주의 뜻대로 사용되어서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대야의 물도 주님의 뜻대로 사용되어서 발 씻는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예수님도 대야의 물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되어서 십자가의 길을 순종하겠다는 의미를 전합니다(3절). 우리도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셋째로 대야의 물은 엎드려서 발을 씻습니다. 당시에 종이 엎드려서 주인의 발을 물로 씻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세상의 법칙으로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8,13절).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의 법칙을 통하여 제자들의 발을 씻는 사랑의 본을 보였습니다(14,15절). 지도자들이 출세했지만 부패하는 이유는 엎드려서 낮은 곳을 바라보는 마음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민중은 개, 돼지라고 하면서 신분제를 공고히 해야 한다고 합니다. 목회자들도 교회를 크게 성장시켰지만 타락하는 이유는 엎드려서 섬기는 마음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어떤 위치에 있을지라도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서 엎드려 섬기는 사랑을 잊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이 저녁 잡수시던 중에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들의 발을 씻었습니다(4절). 왜 주님은 식사 도중에 일어나 발을 씻었을까요? 예수님은 식사가 생명을 살리듯이 엎드려 섬기는 사랑을 나눌 때 서로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34절).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물고기는 자신을 살리는 물의 사랑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도 주님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물고기처럼 우리의 생명을 살리는 주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주님을 사랑을 느끼지 못해서 서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달려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사랑을 느낌으로 서로를 사랑하여 섬김으로 그분의 제자 됨을 나타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35절).
사랑의 주님! 우리의 문 앞에 엎드려 기다리는 죄를 다스리게 하시며, 예수님을 영접하여 그분의 다스림을 받음으로 사랑을 행하게 하소서.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는 사랑을 본받아 이웃을 더러움을 씻어주며,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엎드려 섬기는 사랑을 잊지 않게 하소서. 우리들이 주님의 사랑을 느낌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섬김으로 그분의 제자 됨을 나타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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