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10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광야의 시험을 통과했는가?
설교 본문 : 창세기 40:1-15절
1.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2.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3.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4.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라/ 5.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 6.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7.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8.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9.술 맡은 관원장이 그의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10.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11.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12.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13.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시키리니 당신이 그 전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의 손에 드리게 되리이다/ 14.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5.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0. 들어가는 글
7월 둘째 주일입니다. 우리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에 살고 있는데 그 특징은 절대적인 가치보다는 상대적인 가치가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흐름이 교회까지 침투하여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어도 능력만 있으면 괜찮다는 식이 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 살더라도 교회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세상의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이 광야의 시험을 어떻게 통과해야 하는지 깨닫고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형통의 기준은 무엇인가?
요셉이 아버지의 집에 있었을 때는 형통하다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애굽의 노예로 팔려서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할 때부터 형통하다고 합니다(창39:3).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은 요셉이 애굽의 노예 생활보다도 아버지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더 형통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은 세상의 기준과 다릅니다. 세상의 눈은 얼마나 좋은 조건인가를 보면서 형통을 말하지만 믿음의 눈은 어려운 조건일지라도 주님과 함께 하느냐를 보면서 형통을 말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요셉은 종살이를 하다가 이제는 누명을 써서 감옥에 갇히는 죄수가 되었습니다. 그의 조건이 종살이에서 옥살이로 더 나빠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셉의 옥살이를 형통하다고 합니다(창39:23). 그러므로 어떤 조건이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느냐가 형통의 기준이 됩니다. 요셉은 좋은 조건에 있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고난을 받았지만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형통의 삶도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들도 세상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형통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꿈을 꾸는 것과 꿈을 해석하는 것의 차이?
요셉이 주님과 함께함으로 형통하여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꿈을 꾸는 자에서 꿈을 해석 하는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그가 아버지의 집에서는 꿈을 꾸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그는 꿈을 해석하는 자로 나옵니다. 애굽의 두 관원장이 감옥에서 꿈을 꾸었습니다(5절). 그리고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라고 합니다(8절). 요셉이 아버지의 집에서는 꿈을 꾸는 자였지만 애굽의 노예로 팔린 후부터는 꿈을 해석하는 변화되었습니다.
꿈을 꾸는 것과 해석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첫째로 요셉이 꿈을 꾸었을 때는 다른 형제들과 갈등을 일으켰습니다(창37:5). 그러나 꿈을 해석하였을 때는 다른 사람의 근심을 해결해주었습니다(6절). 꿈을 꾸는 것은 자기중심적이지만 꿈을 해석하는 것은 이타적인 것입니다. 둘째로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는 이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꿈을 꾸는 것은 자신의 소망을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꿈을 해석하는 것에는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가 바로의 꿈을 해석함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총리가 되었습니다(창41:41). 꿈을 꾸는 것과 해석하는 것은 대립구도가 아닙니다. 요셉처럼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꿈을 해석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꿈을 말하듯이 무엇을 하자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 꿈을 해석하여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 대안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무엇을 이루자는 꿈을 말하면서도 그 꿈을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 대안까지 제시하여 성취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 광야의 시험을 통과했는가?
요셉은 아버지 집을 떠나서 광야로 던져져서 종살이를 하고, 옥살이를 하였습니다. 그가 아버지 집에 있을 때는 온실 속에서 참된 믿음인지를 분별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이 광야로 던져져서 시험을 통과할 때 반석위에 세워진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서 광야의 길을 지나면서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도착했지만 원주민들이 있어서 땅을 한 평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창12:6). 그러나 광야의 시험을 통해서 눈에 보이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이 복이 됨을 깨달았습니다. 모세도 애굽의 화려한 왕궁을 떠나서 미디안 광야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첫 번째 광야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함으로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호렙산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다시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땅에 무덤을 남기지 않았습니다(신34:6). 그는 광야의 시험을 통하여 우리의 소망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신 후에 광야에서 40일 금식 기도를 하신 후에 시험을 받았습니다(마4:1,2). 주님도 광야의 시험을 통과했기에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길을 순종하며 갈 수 있었습니다. 바울도 다멕섹 도상에서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아라비아 광야로 들어가서 3년 동안 기도하며 세상의 것들을 단절하였습니다(갈1:17). 그도 광야의 시험을 통과했기 때문에 선교하면서 많은 핍박을 받았지만 끝까지 감당하며 순교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온실에서 나와 광야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하나님의 귀한 그릇으로 쓰임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통과해야 할 광야의 시험은 무엇입니까? 그가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면서 자신을 건져주라고 부탁했습니다(14절). 그러나 그는 풀려난 후에 요셉을 기억하지 않고 잊어버렸습니다(23절). 만약 요셉이 그가 풀어줄 것을 기대했다면 실망하여 낙심했을 것입니다. 그 후로 요셉은 2년 동안 감옥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창41:1). 그리고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기대하는 연단의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요셉이 꿈을 해석하는 것이 달라졌습니다. 그가 꿈을 해석하여 대안을 제시하면서도 그것을 하나님이 행하신다고 합니다(창41:25,28,32). 그는 광야 시험을 통하여 사람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하나님이 행하신다는 믿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이 행하신다는 믿음으로 자신을 팔았던 형들까지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창50:20).
지난주 이중표 목사님 11주기 추모 예배에 갔는데 최근에 개척한 목사님이 성도들의 떠나는 것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는 것입니다. 저도 개척하여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성도들이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하여 사람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행하신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들이 얼마나 많이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고 실망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행하신다는 믿음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온실이 아니라 광야의 시험을 통하여 오직 하나님이 행하시는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의 주님! 우리들이 세상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형통의 삶이 되게 하시며, 우리들이 무엇을 이루자는 꿈을 말하면서도 그 꿈을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 대안을 제시하여 성취하게 하시며, 우리들이 온실이 아니라 광야 시험을 통하여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행하시는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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