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19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누구의 선택에 맡겨야 하는가?
설교 본문 : 사무엘하 15장 24 -29절
24.보라 사독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레위 사람도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하나님의 궤를 내려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도다/ 25.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26.그러나 그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 27.왕이 또 제사장 사독에게 이르되 네가 선견자가 아니냐 너는 너희의 두 아들 곧 네 아들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을 데리고 평안히 성읍으로 돌아가라/ 28.너희에게서 내게 알리는 소식이 올 때까지 내가 광야 나루터에서 기다리리라 하니라/ 29.사독과 아비아달이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도로 메어다 놓고 거기 머물러 있으니라/
0. 들어가는 글
6월 셋째 주일입니다. 지난주 어느 당에서 탈당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사람들을 일괄 복당시켰습니다. 그러나 같은 당이지만 입장이 다른 편에서 전원 복당시킨 것을 쿠데타라고 하면서 반발했습니다. 복당시킨 것이 나라를 빼앗고자 한 것도 아닌데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너무나 경솔하게 말하는 정치의 가벼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정치가 너무나 가벼워서 국민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신앙생활도 우리의 믿음이 가벼워서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정말 쿠데타라는 표현을 사용하려면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압살롬의 반란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인생의 가장 큰 위기를 만난 다윗이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는지 깨닫고 우리들의 삶에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마음을 훔치는 것과 나누는 것은?
오늘 본문에서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킨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복 형 암논이 자신의 누이 다말을 성폭행한 후에 버렸습니다(삼하13:17).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에게 암논의 사건을 바로 잡아달라고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암논에 대한 미움을 품고 잘잘못을 말하지 않았습니다(삼하13:22). 그리고 얼마 후에 그는 양털을 깎는 일에 모든 형제들을 초청하였고 그 중에서 암논을 죽임으로 친히 복수하였습니다(삼하13:28). 시간이 흘러서 다윗은 망명 중이었던 압살롬을 불러서 암논에게 복수했던 사건을 용서했습니다(삼하14:33). 이처럼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는데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에게 불만을 품었다면 그것은 그에게 다른 야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야심은 왕이 되고 싶은데 정당한 방법으로 불가능해지자 쿠데타라도 일으켜서 그 자리에 오르고 싶었던 것입니다.
쿠데타로 아버지의 왕위를 빼앗고자 했던 압살롬이 사전에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것은 백성들의 마음을 훔치는 것입니다(6절). 물건을 훔치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을 훔치는 것도 도적질인 것입니다. 지금도 압살롬처럼 마음을 훔치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마귀는 거짓으로 마음을 훔치지만 예수님은 사랑으로 마음을 나눕니다. 마귀처럼 마음을 훔치는 것은 거짓된 자아로서 자신의 이득을 위해 상대방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처럼 마음을 나누는 것은 참된 자아로서 상대방을 위해 섬기는 사랑입니다. 제가 두려운 것은 목회하면서 하나님이 축복주신다고 하면서 성도들의 마음을 이용하여 여기저기에 동원하며 일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짓된 자아로서 내 만족을 채우기 위해 성도들의 마음을 훔치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이 교회에서 섬기는 것은 오직 주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참된 자아를 가지고 성도들과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목회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가?
압살롬의 쿠데타는 이스라엘의 인심이 모두 그에게 돌아올 만큼 성공적이었습니다(13절). 다윗은 아들의 반란에 위기의식을 느껴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14절). 그가 도망치는데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지고 왔습니다(24절). 내전이 일어난 경우에는 하나님의 궤를 가진 쪽이 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고 하였습니다(25절). 왜 그랬을까요? 다윗이 젊었을 때 사울 왕에게 쫓기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울 왕을 죽이지 않고 하나님의 선택에 맡겼습니다. 그 사건 후에 하나님은 사울이 아니라 다윗을 왕으로 선택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왕이 된 후에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소유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 죄의 결과로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고난을 통하여 그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언약궤의 주인을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히 여기시는 선택에 맡겼습니다(26절). 이처럼 자신이 주인 된 믿음은 스스로 선택해야 하지만 청지기의 믿음은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선택에 맡기는 것입니다.
처음에 다윗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묻고 그분의 선택에 맡기는 청지기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왕이 된 후에 그의 힘으로 모든 것을 소유하려는 주인이 됨으로 타락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압살롬의 반란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택에 맡기는 청지기의 믿음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다시 청지기의 믿음을 회복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가 잘못했던 일뿐만 아니라 잘못했던 자신을 회개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어떤 일을 잘못했다고 회개하지만 회복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잘못했던 자신에 대하여는 회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다윗처럼 잘못했던 일뿐만 아니라 잘못했던 자신을 회개함으로 청지기의 믿음을 다시 회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 잘못했던 자신을 회개한 증거는 무엇인가?
다윗이 잘못했던 일뿐만 아니라 잘못했던 자신을 회개한 증거는 무엇입니까? 사울의 친족이었던 시므이가 도망치는 다윗을 따라오면서 저주를 했습니다(삼하16:7). 다윗이 도망치고 있었지만 자신을 저주하는 시므이 정도는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의 신하였던 아비새가 죽이겠다고 청하였습니다(16:9). 그러나 다윗은 시므이를 죽이지 않고 그의 저주를 받아들였습니다(삼하16:10). 만약 다윗이 여전히 주인노릇을 했다면 저주를 견디지 못하고 보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청지기의 믿음을 회복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저주를 받아들이는 존재까지 낮출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저주를 받아드리는 존재로 낮출 수 있는 것은 잘못했던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이면서 회개하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무시당하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고 여러번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부끄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제 고백에는 아직도 제가 주인 노릇한다는 것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청지기 믿음이라면 무시당하는 것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시당하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저도 죄를 짓는 존재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죄를 지었던 자신을 회개하며 받아들였기 때문에 저주를 받아들인 것과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싫은 소리 하나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은 자신이 주인이며, 얼마나 큰 죄인인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청지기의 믿음으로 죄인인줄 아는 사람은 얼마든지 싫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못했던 일뿐만 아니라 잘못했던 자신을 회개한 청지기의 믿음으로 어떤 저주나 무시도 자신이 죄인인줄 알기에 받아들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청지기 믿음이라면 자신이 저주받은 것까지도 하나님의 선택에 맡겨야 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저주받은 것을 복수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윗은 저주받은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선으로 갚아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삼하16:12). 그러므로 우리들도 청지기의 믿음으로 저주까지도 하나님의 선택에 맡겨서 선으로 바꾸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다시 왕이 되는 은혜도 하나님의 선택에 맡겼습니다. 또한 그는 저주를 선으로 바꾸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선택에 맡겼습니다. 이처럼 축복에서 저주까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 온전한 청지기의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어떤 일이든지 스스로 선택하여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하여 이루어지기를 맡기는 청지기의 믿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의 주님! 마귀처럼 마음을 훔치는 거짓된 자아로서 자신의 이득을 위해 상대방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처럼 마음을 나누는 참된 자아로서 상대방을 위해 섬기게 하소서. 자신이 주인 된 믿음으로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청지기의 믿음으로 기도하여 하나님의 선택에 맡기게 하소서. 우리들이 잘못했던 일뿐만 아니라 잘못했던 자신까지 회개함으로 청지기의 믿음을 다시 회복하게 하소서. 우리들도 청지기의 믿음으로 저주 받은 것 까지도 하나님의 선택에 맡겨서 선으로 바꿀 수 있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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