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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염려를 해결하는가?/ 누가복음 12장 22 - 32절/ 2016년 5월 29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6-05-29 추천 6 댓글 0 조회 1037



2016529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어떻게 염려를 해결하는가?

설교 본문 : 누가복음 1222 - 32

 

22.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23.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24.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25.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26.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 27.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28.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29.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31.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2.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0. 들어가는 글

오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몇 년 전만에도 호황을 누리던 조선업이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줄줄이 도산하고 있습니다. 전혀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고 발등의 불만 끄기에 급급했던 경제 정책이 부메랑이 되어서 막대한 재정적 손실을 입히고 있습니다. 지금의 어려운 현실로 인하여 우리 사회의 증상은 미래에 대한 불안입니다. 이런 미래에 대한 불안은 청년들에게 갈수록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22).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끊임없이 찾아오는 염려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깨닫고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염려하지 말고 생각하라는 의미는?

우리는 무엇을 염려하며 살고 있습니까? 저는 교회를 개척한 이후로 항상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 이전에도 염려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개척한 후로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혹시나 개척한 교회가 잘못되지는 않을까?”라는 염려가 저의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오늘 본문의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몰라서 아니라 알면서도 계속 염려했습니다. 우리들이 왜 염려하는가?”를 알기 위하여 염려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는 염려는 마음이 분열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지 못하고 분열되는 것을 염려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누어진 마음을 예수님께로 모으는 것이 염려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나누어진 마음을 어떻게 예수님께로 모을 수 있습니까? 염려하지 말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24,27). 염려하지 말라는 것을 아무 생각 없이 살아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생각하라는 어떤 의미입니까? 모든 일에서 철저하게 배우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염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일에서 주님의 뜻을 철저하게 배워야 합니다. 한국 경제는 이미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고 구조조정에 실패하여 IMF를 겪은 아픈 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철저히 배우지 못한 결과로 다시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저도 개척 목회를 하면서 철저하게 배우지 못하면 유사한 일들이 다시 생기면서 염려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을 철저하게 배움으로 염려를 줄이고자 합니다. 우리들이 염려하지 말고 생각하면서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철저하게 배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생명이 누구의 것인가?

예수님의 첫 번째 음성은 까마귀를 생각하라고 합니다(24). 우리들이 까마귀를 통하여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생명을 기르신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까마귀도 주님이 기르시는 생명인데 우리들은 까마귀보다도 더 귀중한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25). 여기서 한 자는 46센티미터 정도입니다. 우리의 키를 더할 수 있느냐가 보다는 생명을 더할 수 있느냐의 의미입니다. 주님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서 더 큰 곳간을 짓고 물건을 많이 쌓아놓고 먹고 마시면서 즐거워하자고 하여도 생명을 더 연장시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20). 그러므로 우리의 생명은 모든 것을 기르시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더 연장하는 것이 작은 일입니다(26). 그러므로 생명을 더 연장할 수 없는 우리들이 염려하는 것은 불필요한 것입니다. 개척한 교회도 저의 염려가 아니라 주님의 기르심으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일도 사람의 염려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르심으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 번째 음성은 백합화를 생각하라고 합니다(27). 우리들이 백합화를 통하여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솔로몬처럼 인간이 만든 모든 영광도 주님이 만드신 꽃보다도 훌륭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기준으로 말하는 것입니까? 인간이 만든 것은 아무리 대단할지라도 생명이 없지만 주님이 만든 것은 작을지라도 생명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주님이 만드신 생명보다도 더 훌륭한 것은 없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가 납니다. 지금도 인간의 과학문명이 아무리 발전했다 할지라도 생명만큼은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매일 생명의 아름다움을 창조하십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서도 부자가 곳간을 크게 짓고 아무리 많은 물건을 소유했을지라도 그것이 자신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였습니다(18). 우리의 염려를 내려놓고 생명을 창조하신 주님께 집중할 있기를 소망합니다.

 

3. 하나님의 자녀와 세상 백성의 차이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세상 백성들의 차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무엇을 구하느냐에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 백성들은 무엇을 구합니까? 먹고 마시는 육신의 만족을 구했습니다(29,30).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는 무엇을 구해야 합니까?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여 주님이 다스려야 합니다(31). 그러므로 우리들이 무엇을 구하느냐에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인지 세상 백성인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백성들은 더 많이 소유해서 육신을 즐겁게 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입니다. 예수님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하여 곳간을 더 크게 지어서 더 많이 소유하여 육신의 만족을 즐기려는 세상 백성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18,19).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는 소유를 팔아서 생명을 구제함으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라는 것입니다(33). 우리는 더 많이 소유하려는 것과 소유를 팔아서 구제하는 것 중에서 어느 길을 따르고 있습니까? 우리들이 교회를 통해서라도 선교하고 구제를 많이 하여 하늘에 보화를 쌓아야 합니다. 부디 어리석은 부자처럼 소유에 집착하는 세상 백성이 아니라 선교하고 구제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가 받은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백합화를 들풀과 연결시킵니다(28). 저는 백합화처럼 사람들의 눈에 뛰는 유명한 교회의 목사가 아니라 들풀처럼 김포에서 개척을 한 목사입니다. 그러나 저 같은 들풀도 백합화처럼 동일하게 입히신다는 주님의 사랑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동일한 사랑을 받는데 앞으로도 들풀 같은 제가 백합화처럼 유명한 목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비울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에 연연하지 않고 주님이 맡기신 자리를 묵묵히 지키면서 더욱더 들풀처럼 살고 싶습니다. 들풀의 성품은 어디서나 주연이 아니라 조연으로서 다른 것을 살리는 역할을 합니다. 실제로 들풀이 아궁이에 던져지는 것도 불쏘시게 역할을 해서 큰불을 살리는 희생입니다(28). 이처럼 들풀은 다른 존재를 위하여 헌신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또한 들풀은 힘이 없어서 이리 저리 흔들리면서 밟히기도 하지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다시 살아나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뼈가 없고 가시가 없어서 누구에게도 해를 가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줍니다. 이런 들풀의 모습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혹시 우리들이 실패하고 초라해져서 이리 저리 치이면서 누군가에게 밟힐까봐 염려하는 것은 없습니까? 저도 이리 저리 치이고 밟히는 것을 염려하여 백합화처럼 유명해지려고 애쓴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들풀처럼 비우고 산다면 모든 근심과 염려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누가 저를 이리 저리 흔들면서 밟을 지라도 뼈와 가시를 제거해서 받아주는 들풀이 되고 싶습니다. 이런 들풀의 모습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뼈가 있는 말과 가시 돋친 행동이 아니라 들풀처럼 모든 것을 받아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의 주님! 마음이 분열되는 염려를 예수님께 집중서 해결하게 하시며, 염려하지 말고 생각함으로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철저하게 배우게 하소서. 하나님이 까마귀처럼 우리를 기르시며, 백합화처럼 우리를 입히시는 주님의 사랑에 모든 염려를 맡기게 하소서. 우리들이 세상 백성처럼 더 소유하려는 육신의 만족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처럼 소유를 팔아서 구제함으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게 하소서. 이제는 누가 우리를 이리 저리 흔들고 밟을 지라도 뼈와 가시를 제거해서 받아주는 들풀처럼 성숙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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