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2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모세를 죽이려는 이유는?
설교 본문 : 출애굽기 4장 18 - 26절
18.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 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이드로가 모세에게 평안히 가라 하니라/ 19.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목숨을 노리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 20.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2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그가 백성을 보내 주지 아니하리니/ 22.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23.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 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24.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25.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갖다 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26.여호와께서 그를 놓아 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 때문이었더라/
0. 들어가는 글
오늘은 5월 넷째주일입니다. 지난주부터 때 이른 폭염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성도님들도 폭염주의보에 건강관리 잘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지난주 강남 역의 화장실에서 묻지마 살인이 우리 사회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묻지마 살인을 한 삼십대 남자의 살해 동기가 여성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건설사 사장을 죽이고 시신을 암매장한 사람도 살해 동기가 자신을 무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들도 누군가에게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사람을 죽일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모두 다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사43:4). 오늘 본문은 모세가 하나님의 사명을 받고 애굽으로 떠나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모세 사이에 충돌이 있었습니다. 그 충돌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깨닫고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모세는 장인 이드로에게 어떻게 허락받았는가?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모세가 호렙산 떨기나무에서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거절했습니다(1절). 하나님은 두 가지 이적을 보여주면서 설득하였습니다. 그러나 또 다시 그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자라고 하면서 거절했습니다(10절). 하나님은 말을 잘 하는 형 아론이 함께 할 것이라고 설득하였습니다(14절). 이런 과정을 거치고 모세가 애굽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애굽으로 가는 도중에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 합니다(24절). 하나님이 모세를 어렵게 설득해서 애굽에 가기로 했는데 왜 그를 죽이려고 했을까요?
모세는 애굽으로 떠나기 전에 장인 이드로를 만났습니다(18절). 그가 애굽에서 도망친 후에 미디안에서 40년 동안 함께 보낸 장인에게 인사를 하고 떠나는 것은 당연한 예의입니다. 그러나 그는 애굽으로 가는 이유를 하나님의 사명이 아니라 형제들이 살아있는지 알아보러 간다고 거짓으로 둘러댔습니다. 모세는 장인을 만날 때부터 이미 하나님과 삐거덕 거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은 거짓된 마음과 인간적인 방법으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아직까지도 모세는 40년 전에 이스라엘의 해방을 시도할 때 사용했던 인간적인 방법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가 예전에는 인간의 방법으로 이루려고 했다면 지금은 인간의 방법으로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겉모양은 다를 수 있으나 마음의 동기는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적인 방법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들이 인간적인 방법을 내려놓아야만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생명의 주관자가 누구인가?
모세는 미디안에서 장인을 만난 후에도 바로 애굽으로 떠나지 않고 지체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목숨을 노리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고 합니다(19절).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모세는 그제야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떠났습니다(20절).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가 장인에게 거짓으로 둘러대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다시 그에게 애굽에서 감당해야 할 사명을 전해주었습니다(21절).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그를 만나서 죽이려 하였습니다(24절).
우리는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죽인다는 것이 아니라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생명이 누구에게 달려 있느냐?”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십보라가 그의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고 피 남편이라고 했을 때 “여호와께서 그를 놓아 주시니라”고 합니다(26절). 여기서 ‘놓아 주시니라’는 ‘치료해주셨다’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죽을 질병을 주셨지만 다시 치료해주셨습니다. 모세는 부르심을 받을 때에도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는데도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으려다가 다시 살아나는 별세의 체험을 통하여 새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깨달을 때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3. 모세의 별세를 통하여 주시는 교훈은?
모세는 죽으려다가 다시 살아나는 별세의 은혜를 통하여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도구로 변화되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생명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았을 때 주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의 생명이 하나님의 소유가 될 때 주님의 뜻대로 사용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을 때 핑계되는 입술에서 말씀을 대언하는 입술로 변화되었고, 양을 치는 지팡이에서 하나님의 지팡이로 변화되었고, 인간적인 방법에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서 주님의 뜻대로 사용되는 도구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는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에서 가정을 변화시키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가정을 변화시켜야 합니까? 우리 가정의 주인이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십보라에게 가정의 주인은 남편 모세였습니다. 본문에서 모세가 십보라를 통하여 죽음의 위기를 모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방여인의 아내가 아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는 할례를 미루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십보라와 결혼한 후에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아내의 말에 끌려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이 질병으로 죽으려고 할 때 그를 살리기 위해서 그동안 미루었던 할례를 아들에게 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은 이방여인 십보라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남편 모세를 죽이려는 방법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사건 후에 변화가 일어나서 십보라는 남편의 생명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깨닫고 자녀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남편이 받은 하나님의 사명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남편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홍해를 건너서 아멜렉을 물리치고 광야에 이르렀을 때 다시 남편에게 찾아왔습니다(출18:6). 모세가 가정을 믿음으로 세울 때 하나님의 사명을 더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들이 가족을 믿음으로 세우지 못하며 하나님께 헌신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가정을 믿음을 세워서 하나님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는 사람으로 변화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고 했던 것이 할례와 관련이 있습니다(26절). 할례는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맺은 언약입니다(창17:10). 그리고 할례를 받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는 것입니다(창17:14). 또한 하나님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는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다는 것도 하나님의 언약입니다(창15:13,14). 그러므로 모세가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는 할례의 언약은 지키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통치하는 가나안의 언약을 이루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가 먼저 할례의 언약을 지켜야만 신정국가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언약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창17:8). 우리에게 적용하면 할례의 언약은 세례를 받아서 구원받는 것이고, 가나안의 언약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구원받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처럼 모세의 가정이 할례 받지 않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가정이 구원을 받는 할례는 그를 죽이려고 할 만큼 심각한 문제이며, 목숨을 걸어서라도 해결해야 할 문제였습니다. 우리들도 내가 죽고 다시 사는 별세의 은혜를 통하여 가정이 변화되고 교회 공동체도 천국으로 변화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의 주님! 첫째는 우리들이 인간적인 방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하시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별세의 체험을 통하여 새사람으로 변화되게 하소서. 둘째는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서 주님의 뜻대로 사용되는 도구가 되게 하소서. 셋째는 내가 죽고 다시 사는 별세의 은혜를 통하여 가정이 변화되고 교회 공동체도 천국으로 변화될 수 있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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