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15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누구의 기대를 이루는가?
설교 본문 : 사도행전 12장 1 - 12절
1.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4.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5.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6.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 대/ 9.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0.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11.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12.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0. 들어가는 글
오늘은 5월 셋째주일이며 스승의 날입니다. 또한 성령 강림 주일입니다. 지난주 성령님은 저의 마음을 참으로 가난하게 하였습니다. 아직도 내 안에 남아있는 알량한 자존심과 꿈틀대는 자아를 보게 하였습니다.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가 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내 자신의 모습에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저의 스승이었던 이중표 목사님이 왜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사는 별세의 믿음을 간절히 사모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신 이유가 무엇일까를 묵상했습니다.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성령의 능력으로만 사람이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말 내가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되어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초대 교회에서 제일 심한 핍박이 있었습니다. 가장 심했던 핍박을 초대교회가 어떻게 성령의 능력으로 극복했는지를 깨닫고 우리들의 삶에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누구를 기쁘게 하는가?
오늘 본문에서 요한의 형제 야고보가 제자들 중에는 첫 번째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2절). 상대적으로 형제였던 요한은 제자들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형제로 태어나서 고기 잡는 일도 함께하다가 주님의 제자로도 함께 부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변화산을 오르거나 겟세마네 동산에 오를 때에도 형제를 함께 데리고 갔습니다. 이렇게 야고보와 요한의 형제는 항상 함께 했는데 먼저 형이 순교했습니다. 제 생각이지만 야고보가 순교할 때 동생 대신에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항상 함께 다녔기 때문에 함께 죽을 수 있는데 요한이 잠시 그 자리에 없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죽은 형보다도 살아있는 요한이 더 괴로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되었을 때 어떻게 외로움과 고통을 끝까지 견디며 계시를 받아서 말씀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까? 물론 성령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먼저 순교한 형의 몫까지 주님의 사명을 대신해야 한다는 믿음이 그를 견디게 했을 것입니다. 먼저 순교한 야고보와 가장 오래 살았던 요한은 자신의 그릇대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귀한 도구였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도구라면 주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헤롯 왕이 야고보를 죽었을 때 유대인들이 기뻐했습니다(3절). 이처럼 세상은 사람들의 기쁨을 위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순교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였고, 요한은 끝까지 믿음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누구의 기쁨을 위해서 살고 있습니까? 제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저는 실패자로 목회를 포기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소망 때문에 믿음으로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하면 사람들의 기쁨을 따지지만 성령에 속하면 하나님의 기쁨을 추구합니다. 우리 모두 성령에 속하여 주님의 기쁨을 추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야고보가 순교하였고 베드로가 붙잡혀서 사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4절). 초대교인들은 야고보의 죽음에 이어서 베드로까지 죽게 된다면 교회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꼈을 것입니다. 초대교인들이 무너질 수 있는 교회를 살리기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를 감옥에서 구출할 수도 없었고 헤롯 왕의 핍박으로부터 교회를 지킬 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는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5절). 초대교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간절히 기도했는데 가장 위대한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사실 초대교인들은 어떻게 해달라고 기도해서 응답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목적없이 간절히 기도한 것뿐입니다. 그 증거로 베드로가 하나님의 기적으로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베드로가 탈출하여 집 앞에 서있다고 여자아이가 전해주는데 미쳤다고 했습니다(15절). 그들은 어떤 응답의 결과를 기대하며 기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인간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그냥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저도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응답해달라는 기도를 더 많이 합니다. 그러나 초대교인들처럼 목회하면서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저 주님의 처분만 바라보며 그냥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에 주님이 더 선하게 인도해주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그냥 주님께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성령님이 더 위대하게 역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누구의 기대를 이루는가?
초대 교인들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오직 주님께 기도할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첫째로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났습니다(7절). 베드로는 감옥에 갇혀서 다음날 처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홀연히 주님이 옥중까지 찾아오셨습니다. 여기서 홀연히는 오순절 날 마가다락방에 성령이 임하는 방식과 동일한 표현입니다(행2:2). 그리고 홀연히의 의미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며, 우리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달라고 기도하는 성숙한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옥중에 주의 사자가 나타났을 때 광채가 빛났습니다(7절). 이것은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을 변화시킨 광채와 동일합니다(행9:3). 그리고 여기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나옵니다. 옥중에 갇혀있는 베드로는 어둠속에 있지만 주님이 찾아오셔서 광채나는 인생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죽이려는 헤롯의 왕궁에는 세상의 빛들이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찾아오지 않으면 어둠속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결론으로 그는 결국 교만에 도취되어 벌레에게 먹혀 죽었다고 나옵니다(23절). 그러므로 “옥중에 있느냐?, 왕궁에 있느냐?”가 아니라 “주님이 찾아오셔서 광채를 비추느냐?”가 우리의 생명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에도 주님이 찾아오셔서 어두운 우리의 마음에 빛이 비추어서 변화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셋째는 정신이 들어서 주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옥중에서 하나님의 기적으로 쇠사슬이 풀어지고 옥문이 열었지만 생시인줄 모르고 환상을 보는 줄 알았습니다(9절). 그가 정신이 들었을 때 참으로 주님의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뜻은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것입니다(11절). 이처럼 참된 신앙은 사람의 기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대를 이루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누구의 기대를 이루기 위해서 매달리고 있습니까? 혹시 자신의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실망하는 것은 아닙니까? 자신의 기대를 이루기 위해 믿으면 시험들고 상처받아서 넘어집니다. 베드로가 정신이 들었을 때 깨달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기대를 이루기 위해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베드로처럼 정신이 들어서 자신의 기대를 내려놓고 주님의 기대를 이루기 위해 믿고 기도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의 주님! 우리가 사람의 기쁨이 아니라 성령에 속하여 주님의 기쁨을 추구하게 하시며,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라도 그냥 주님께 매달리며 기도하게 하소서. 또한 우리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시며, 세상의 화려한 빛이 아니라 주님의 광채가 비추어서 변화되게 하시며, 정신이 들어서 자신의 기대를 내려놓고 주님의 기대를 이루기 위해 믿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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