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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좋아했는가?/ 마가복음 9:2-8절/ 2016년 4월 10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6-04-10 추천 3 댓글 0 조회 752



2016410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무엇을 좋아했는가?

설교 본문 : 마가복음 9:2-8

 

2.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4.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5.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7.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0. 들어가는 글

4월 둘째주일입니다. 국회의원 선거 투표일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포에서 목회를 한 후로 저의 여가 생활은 주변의 산들을 오르는 것이 되었습니다. 제가 자주 산에 오르는 이유를 돌아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정상을 오르는 성취감이었는데 언제부턴가는 세상 것들이 비워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누구든지 저에게 왜 산에 오르느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비우기 위해 오른다고 답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다(2). 이처럼 주님도 공생애 기간에 자주 산에 오르셨습니다. 예수님이 산에 오르신 이유도 제가 느꼈던 비움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높은 산에 오르신 후에 몸이 변화되었습니다. 그것에 반응하는 제자들이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깨닫고 우리들이 예수님과 바른 관계를 세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어떤 일이 높은 산에서 일어났는가?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었습니다(2). 여기서 예수님은 어떻게 변형이 가능했습니까? 저절로 변형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간절히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누가는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고 합니다(9:29). 예수님이 산에서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강하게 임재하여 희게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희게 변화된 것은 하나님의 강한 임재의 결과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기도할 때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스스로 변화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임재를 통하여 새롭게 변화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엘리야와 모세가 저절로 나타났습니까? 이것도 예수님이 간절히 기도할 때 나타났습니다(4). 왜 높은 산에서 그들이 나타났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보여줍니다. 모세는 구약의 율법을 대표하고, 엘리야는 선지자의 예언을 대표합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과 예언을 모두 다 이루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높은 산에서 희게 변형되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은 간절한 기도의 능력이었습니다. 높은 산에서 주님의 기도 능력은 산 아래의 문제까지도 연결됩니다. 산 아래 남아있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18). 그러나 산에서 내려온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사건이 종결된 후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묻습니다(28). 주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합니다(29). 예수님이 높은 산에서 희게 변화된 능력과 산 아래서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은 모두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도 기도 외에는 다른 것이 없음을 알고 오직 기도를 통하여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무엇을 좋아했는가?

베드로가 높은 산에서 주님께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합니다(5). 그는 왜 여기에 있는 것을 좋다고 합니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좋은 것입니다. 누가 모세와 엘리야를 나타나게 했습니까? 예수님이 기도의 능력으로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기도해서 그들을 나타나게 하신 예수님을 좋아해야 합니다. 우리도 베드로와 같은 실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것을 주님보다도 더 좋아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들이 주님께 받은 선물을 더 좋아합니다. 그리고 주님께 받은 것과 체험한 것들을 예수님보다 더 자랑합니다. 그리고 한술 더 떠서 그것을 받거나 체험한 자신까지도 대단하고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떠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선물이 어떤 것일지라도 우리에게 주신 주님보다 더 특별하거나 대단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이 무엇을 받고 체험하는 것에 좌우되지 않고 오직 주님 자체를 좋아하는 믿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베드로는 그런 기도의 능력을 지니신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함께 있는 주님보다도 눈앞에 나타난 신비로운 현상에 빠졌습니다. 우리 앞에 어떤 신비로운 현상이 나타나더라도 함께하시는 예수님보다도 더 대단할 수 없습니다. 그들 눈앞에 나타난 신비로운 현상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둘러보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8). 그러나 오직 예수님만이 자신들과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대단한 현상일지라도 사라지는 것들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지금도 자신을 지켜줄 수 있다고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기 위해서 힘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지켜줄 수 있는 분은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 한분밖에 없는 것입니다.

 

3. 초막 셋에 어떤 질문이 있는가?

베드로는 높은 산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날 때 초막 셋을 짓자고 합니다(5). 여기서 초막 셋에는 세 가지 질문이 담겨있습니다. 첫째로 예배에서 누구를 위하는가?” 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위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서도 초막을 짓는다고 합니다(5). 여기서 위하여예배에서 누구를 위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도 예배에서 예수님을 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배에서 예수님만을 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예배에서 사람을 위하면 무너져 내립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만을 위하는 예배가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그들은 왜 몹시 무서워했느냐?” 입니다. 예수님이 무슨 말을 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6). 그들이 무슨 말을 하지 몰라서 두려워하는 것은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 주님을 신뢰했다면 무슨 말을 할지 몰라서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실제로 서로 신뢰가 부족할수록 무슨 말을 할지 몰라서 두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 신뢰가 있으면 무슨 말을 해도 두려워하기보다도 잘 소화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신뢰한다면 무슨 말씀을 할지 몰라서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평강이 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했느냐?” 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께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했습니다(7). 주님이 마귀의 유혹을 이겼던 것도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들었기 때문입니다(1:11). 또한 예수님이 고난의 길을 흔들림 없이 갔던 것도 오늘 높은 산에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동일합니다. 우리들이 세상의 유혹을 이기고, 각자에게 닥친 고난을 감당할 수 있는 것도 어떤 능력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사랑받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주님의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7).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요? 주님도 제자들에게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동일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는 초막을 짓는 일에만 열심히 많았습니다. 저도 초막을 짓는 것처럼 일을 잘해서 주님께 인정받고 싶었던 목회자입니다. 지난주 기도하면서 이제는 주님께 사랑받는 자녀가 되어서 말씀을 듣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요? 저에게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 순간 내 마음이 오직 예수님만으로 채워지면서 세상의 모든 것들이 시시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것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은혜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주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인데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씀을 계속 들어서 모든 것을 견디며 감당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의 주님! 우리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통하여 새롭게 변화되게 하시며, 기도 외에는 다른 것이 없음을 알게 하소서. 우리들이 무엇을 받고 체험하는 것에 좌우되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좋아하게 하소서. 우리를 영원히 지켜주는 주님만을 위하여 예배하게 하시며, 주님을 신뢰하여 두려움이 물러가고 평강이 임하게 하시며, 주님께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씀을 듣고 모든 것을 견디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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