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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끼는 것을 포기할 수 있는가?/ 창세기 22장 1-12절/ 2016년 3월 6일 주일 설교
황승재 2016-03-23 추천 3 댓글 0 조회 1172



201636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가장 아끼는 것을 포기할 수 있는가?

설교 본문 : 창세기 221-12

 

1.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4.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6.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7.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8.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9.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10.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11.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0. 들어가는 글

3월 첫째주일이며, 사순절 넷째 주일입니다. 어제 내린 봄비가 폭우처럼 쏟아졌습니다. 대지가 메말라서 그런지 시원스럽게 내리는 봄의 폭우가 싫지만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현실들이 너무 답답하고 어렵습니다. 이런 우리의 마음도 해갈해 줄 수 있는 성령의 폭우가 내려오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주저없이 독자를 번제로 드렸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순종을 가장 훌륭한 믿음으로 대접합니다. 그러나 저는 최근에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에게 어떤 아버지였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은 아들과 어떤 소통도 없었고, 너무 일방적인 모습으로 느껴졌습니다. 아버지가 자식의 의견을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하면 자녀들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처럼 아버지의 일방적인 모습에 트라우마 있으면 아브라함의 순종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왜 자식을 희생시켜야만 했는가?”의 의문을 풀어야만 아브라함의 순종을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1. 아버지와 아들은 어떤 동행이었는가?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과 함께 삼일동안 모리아 땅까지 동행했습니다(4). 아버지와 아들의 삼일간의 동행은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지만 자식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데려가는 마음이 편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이삭은 아버지를 따라가면서도 도대체 번제가 어디에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지우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함께 길을 걷는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에게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고통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 위하여 골고다의 길을 가실 때 함께 동행 하셨던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도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땅에 도착하자 이제는 종들과 나귀는 남겨두고 이삭과 함께 모리아 산에서 예배를 드리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예배를 드린 후에 그들이 함께 돌아오겠다고 하는 것입니다(5).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아들을 번제로 드린다면 함께 돌아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왜 모순된 고백을 하였을까요? 우리는 이 장면을 미화시켜서 아브라함은 아들을 하나님이 다시 보내줄 것을 아는 대단한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런 해석은 아브라함이 아들을 번제로 잡을 때 하나님이 멈추게 하고 숫양을 대신 받은 결과를 알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13). 이처럼 우리는 성경의 결과를 알고 미화시키기 때문에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 본받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이삭을 다시 보내준 결과를 모른다면 아브라함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아브라함이 아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선의의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아들에게 끝까지 진실을 숨기는 것입니다. 이런 근거의 해석은 모리아 산에 오르면서 아버지께 이삭이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라는 물음에서 알 수 있습니다(7). 이삭의 물음이 너무 늦은 감이 있었지만 아버지 아브라함은 끝까지 진실을 말하지 않고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회피하는 답을 하였습니다(8).

 

2. 아들을 받치는 번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우리는 이제 수습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왜 아들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는 것을 말하지 못했을까요? 또한 이삭은 진실을 밝히지 않고 아버지가 자신을 결박하여 번제로 드리는 것을 어떻게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었는가?”에 대한 궁금증까지 풀어야 합니다.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번제로 받치라는 명령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힘으로 받아드린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이 아들을 절대로 가질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창조주 하나님이 아들을 가질 수 있도록 가능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아들을 받치라는 명령도 절대로 거역할 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의 권위를 느꼈을 것입니다. 또한 이삭은 아버지와 삼일이 넘는 시간을 동행하면서 평소와 다르게 깊이 고뇌하며 무언가를 말하지 못하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4). 때로는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도 말하지 못하며 주저하는 모습에 더 안타가운 사랑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번제로 드리는 마음을 비유로 표현합니다. 지진과 같은 자연의 대재앙 앞에서 죽어가는 아들을 아버지의 힘으로는 도저히 살릴 수 없는 무기력함을 느끼며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리고 그런 부모의 고통스러운 모습에서 전해오는 사랑을 느끼며 그 자녀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이 아들을 번제로 드리면서 서로에게 이런 마음이 전해졌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8) 것은 결코 회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밖에 없는 절실한 심정입니다. 연약하고 부족한 보모가 자녀를 책임질 수 없으면서도 붙잡고 있는 것보다도 친히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맡기는 것이 자녀를 향한 더 튼 사랑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면서 오히려 진실을 말하지 못하며 고뇌의 침묵을 통하여 더 깊은 사랑이 아들에게 전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민하며 아파하는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아들에게 삼일간의 동행할 시간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이유없는 고통을 당할 때 아무런 반응없이 침묵하는 하나님을 향하여 답답함을 느끼며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하나님의 침묵 속에 더 깊은 사랑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3. 가장 아끼는 것을 포기할 수 있는가?

이제 말씀을 마무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어떤 시험을 하였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가장 아끼는 것을 포기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12). 아브라함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독자 이삭을 포기함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증명하였습니다. 우리도 사순절을 보내면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가장 아끼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포기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며 예배를 드리는 뿌리도 내가 가장 아끼는 시간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입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가장 아끼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잃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생명까지도 포기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은 다시 부활의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가장 아끼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늘의 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16,17). 우리는 자신의 아끼는 것을 움켜잡고 하늘의 복을 달라고 구함으로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내가 가장 아끼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해보았습니다. 주저없이 현재 개척하여 섬기는 교회였습니다. 우리가 가장 아끼는 것을 하나님보다도 더 붙잡고 있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부패하고 타락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장 아끼는 것을 포기하여 하나님 다음으로 만들어야만 세상의 어떤 유혹도 이기면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아끼는 것을 붙잡고 지키는 것보다도 하나님이 돌보시는 것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더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개척하여 섬기는 교회를 하나님 다음으로 포기해야만 예수님이 주인되는 교회로 새롭게 부활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것을 하나님 다음으로 포기하여 그것이 무엇이든지 부활의 은혜로 새롭게 받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사랑의 주님! 우리들이 아브라함처럼 창조주 하나님의 권위 앞에서 거역할 수 없는 순종을 체험하게 하시고, 이삭처럼 아버지의 말하지 못하는 침묵에서 더 깊은 사랑을 느끼게 하시며, 우리들이 가장 아끼는 것을 하나님 다음으로 포기하여 부활의 은혜를 받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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