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1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당신은 길을 돌이킬 수 있는가?
설교 본문 : 요나서 1장 11-16절
11.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하니/ 12.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13.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14.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15.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16.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0. 들어가는 글
오늘은 사순절 둘째 주일입니다. 예수님이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합니다(눅9:23). 우리들이 사순절을 보내면서 자기를 부인할 것이 무엇이며, 날마다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알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 있는 우리나라의 모습은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위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형국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위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요나와 선원들이 나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풍랑이 몰아치는 고난에서 어떻게 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지 깨닫고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당신은 던질 수 있는가?
요나서는 다른 선지서와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는 다른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를 선포했는데, 요나 선지자는 이방인 니느웨 백성에게 회개를 선포했습니다. 그러므로 요나서는 구약에서 유대민족이 선민의식에서 벗어나 이방인까지 선교했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둘째는 다른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는데, 요나 선지자는 사건의 중심에 휘말려 들어갔습니다. 그러므로 요나는 말씀의 대언보다는 사건 자체를 통하여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셋째는 다른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는데,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립하여 불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불순종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요나 선지자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요나서는 중요한 세 개의 단어가 반복되면서 말씀을 이끌어갑니다. 제일 먼저 이끌어가는 단어는 ‘던지라’ 입니다. 요나서 1장에서 ‘던지라’는 단어가 네 번씩이나 나옵니다. 그리고 ‘던지라’는 것을 통하여 풍랑의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큰 바람을 던졌습니다.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될지라”고 합니다(욘1:4). 여기서 큰 바람을 내렸다는 것은 던졌다는 것과 동일합니다. 하나님이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도망치는 요나에게 큰 바람을 던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도망치는 신앙이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왜 고난이 닥쳤느냐고 불평할 수도 있지만 그 풍랑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사공들이 물건을 던졌습니다.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고 합니다(욘1:5). 여기서 사공들이 풍랑을 만났을 때 물건들을 바다에 던진 이유는 배를 가볍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이처럼 인생의 풍랑을 만났을 때 자신을 무겁게 하는 물건들을 던져서 가볍게 해야만 탈출구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셋째로 요나가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합니다.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며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줄을 아노라 하니라”고 합니다(12절). 여기서 요나가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폭풍을 만난 원인이 자신인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풍랑을 만났을 때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때문인 줄 알았을 때 잠잠하게 할 수 있습니다.
넷째로 선원들이 요나를 바다에 던졌습니다.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고 합니다(15절). 선원들은 힘써 노를 저어 풍랑을 이겨보려 했지만 점점 더 흉흉해져 할 수가 없었습니다(13절). 결국 선원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요나를 바다에 던졌을 때 풍랑이 잠잠해졌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음을 알고 겸손히 하나님의 뜻대로 할 때 잠잠해지는 것입니다(14절).
2. 당신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두 번째로 요나서를 이끌어가는 단어는 ‘두려워하다’ 입니다. 요나서 1장에서 ‘두려워하다’는 단어가 세 번이나 나옵니다. 그리고 ‘두려워하다’는 통하여 진정한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본능적으로 두려워했습니다.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입니다(욘1:5). 여기서 폭풍우를 보면서 본능적으로 두려워한 것입니다. 인간은 자연의 재앙 앞에서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연약함을 받아들이면 신들을 찾게 됩니다. 그러므로 선원들은 잘못된 무속 신들을 찾았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신을 찾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신은 오직 하나님 한분밖에 없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두려워했습니다. “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입니다(욘1:10). 선원들은 요나를 통하여 풍랑을 일으킨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두려워했습니다. 우리들이 무섭게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단계에만 있다면 초보적인 신앙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두려워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입니다(16절). 선원들은 풍랑을 잠잠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두려워하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신뢰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의 두려움입니다. 우리들은 본능적인 두려움으로 신을 찾고, 진노하시는 두려움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 두려움으로 진정 믿음의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3. 당신은 돌이킬 수 있는가?
세 번째로 요나서를 이끌어가는 단어는 ‘돌이키다’ 입니다. 요나서 3장에서 ‘돌이키다’는 단어가 세 번이나 나옵니다. 그리고 ‘돌이키다’를 통하여 진정한 돌이킴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길을 돌이켰습니다.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고 합니다(욘3:3). 여기서 요나는 반대편으로 도망치다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니느웨로 길을 돌이켰습니다. 우리는 방향만 아니라 길을 돌이켜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진정한 돌이킴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길로 돌이켜서 가는 것입니다.
둘째로 악한 길에서 돌이켰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입니다(욘3:10). 여기서 니느웨 백성들은 요나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악한 길에서 돌이켰습니다. 이처럼 진정한 돌이킴은 악한 길에서 돌이켜서 떠나는 회개입니다.
셋째로 구원으로 돌이켰습니다.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고 합니다(욘3:10). 여기서 하나님은 재앙에서 구원으로 돌이켰습니다. 하나님은 돌이키지 않는 성품인데 유일하게 심판에서 구원으로만 돌이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구원으로 돌이키기 위해서는 요나처럼 우리가 회개하라는 말씀을 전할 때 가능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이킴으로 악한 길에서 떠나서 회개의 말씀을 전하여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요나서에 나오는 세 가지 단어가 지금도 우리의 믿음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세상 것을 던지는 만큼 가벼워지며, 하나님을 경외하여 두려워하는 만큼 믿음이 바로 세워지며, 하나님께로 길을 돌이키는 만큼 악한 길에서 떠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풍랑이 몰아치는 세상에서 던지고, 두려워하고, 돌이키는 세 단어가 구원의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