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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존중히 여기는 것은?/ 사무엘 상 2장 27 - 30절/ 2016년 2월 7일 주일 설교
황승재 2016-03-24 추천 4 댓글 0 조회 1300


201627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가장 존중히 여기는 것은?

설교 본문 : 사무엘 상 227 - 30

 

27.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 28.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그를 택하여 내 제사장으로 삼아 그가 내 제단에 올라 분향하며 내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자손이 드리는 모든 화제를 내가 네 조상의 집에 주지 아니하였느냐/ 29.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30.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0. 들어가는 글

2월 첫 주일이며, 설 명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사사 시대의 말기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영적 암흑기였습니다. 하나님이 영적 암흑기를 끝내기 위해 준비했던 믿음의 인물이 사무엘입니다(35).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사무엘을 세우기 직전에 영적으로 타락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금주 명절을 보내면서 우리 가정도 영적으로 타락한 모습은 없는지 돌아보면서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가정으로 세워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영적으로 타락한 이유는?

사사 시대의 말기에 대제사장 엘리는 매우 늙었고 영적인 능력을 거의 상실했습니다(22). 그리고 그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했습니다(12). 엘리 제사장이 영적인 능력을 상실하고 신앙 교육에 실패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는 간접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대제사장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직접 만나지 못하는 간접 신앙이었습니다. 당시에 대제사장이면 하나님을 직접 만나서 말씀을 듣고 백성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름 없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해 들었습니다(27). 이처럼 하나님을 직접 만나지 못하고 전해 듣는 간접 신앙은 사탄의 유혹에 쉽게 넘어집니다. 지금도 간접 신앙은 어떤 사건이 터지면 실족하여 교회를 떠나는 가나안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부디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신앙이 되어서 실족하지 않고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는 영적인 소경이기 때문입니다. 사무엘 3장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더라”(1)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2) 것이 연결되었습니다. 이것은 눈이 어두워져 가는 것을 하나님을 말씀을 보지 못하는 영적인 소경으로 비유하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고 합니다(34:7). 모세는 엘리 제사장보다도 수십 년을 더 살았지만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죽을 때까지 영적인 눈이 흐리지 않았습니다. 한국 교회는 모세처럼 영적인 능력의 충만으로 시작했다가 인생의 후반부에 엘리처럼 영적인 눈이 흐려져서 타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디 인생의 마지막까지 모세처럼 영적인 눈이 흐리지 않음으로 믿음의 아름다움을 지킬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셋째는 말씀의 부재 때문입니다. 사사 시대가 말씀의 부재로 영적인 암흑기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면 영적인 능력을 상실합니다. 지금의 시대가 걸어 다니면서도 스마트 폰을 볼 정도로 온통 보는 것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나 한주를 보내면서 말씀 한 장 보는 사람을 찾기가 힘든 시대입니다. 또한 자녀 세대로 내려가면 더 심각합니다. 우리 자녀들도 스마트 폰은 정신없이 보면서도 말씀을 보는 일은 정말 힘들어 합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이 사사 시대처럼 말씀을 멀리하는 영적인 암흑기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 가정을 영적으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만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금주처럼 명절이 되면 잠시 말씀을 떠나 세상적으로 행해도 하나님이 눈감아 줄 것처럼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평상시에도 전혀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는 간접 신앙으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이번 명절 기간에는 우리 가정이 말씀을 만나는 은혜를 자녀들에게 신앙의 본으로 보여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가장 존중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은 영적으로 타락한 엘리와 아들들을 어떻게 책망합니까?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고 합니다(30). 여기서 하나님을 존중히 여긴다는 것은 그분을 높이며 귀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을 말씀으로 풀면 말라기에서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고 합니다(3:16). 여기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존중히 여기는 것을 동급으로 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존중히 여기는 믿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면 어떤 변화가 일어납니까?

 

첫째는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변화됩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아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했습니다.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날 것을 원하신다라고 합니다(15). 그들은 육신의 만족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하나님을 존중하여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라고 합니다(삼상3:19). 그가 하나님을 존중하여 말씀대로 순종했기 때문에 그의 말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들도 육신의 만족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존중히 여겨서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는 예배를 존중히 여기는 믿음으로 변화됩니다. 엘리의 두 아들은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아서 예배를 멸시했습니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고 합니다(17). 그러나 사무엘은 하나님을 존중하여 예배까지 존중히 여겼습니다.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고 합니다(18). 하나님은 예배를 멸시하는 자가 아니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들어서 사용합니다(35). 우리들이 교회만 오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존중히 여기며 섬기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도 어려서부터 예배를 존중히 여기는 믿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새해에는 우리 가정이 예배를 존중히 여기며 섬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을 더 중히 여기는 믿음으로 변화됩니다.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은 무엇을 더 중히 여기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엘리 제사장은 자녀들에게 육신적으로 가장 좋은 것을 주었지만 그들의 믿음을 세워주지 못했습니다(29). 그는 하나님보다도 자신의 아들들을 더 중히 여겨서 신앙 교육에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나 한나는 사무엘을 주신 하나님을 더 중히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은 어렸을 때부터 세마포 옷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고 합니다(18). 그녀는 자녀를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세우는 것을 더 중히 여겼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더 중히 여기는 우선순위가 무너지면 영적 싸움에서 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더 중히 여기는 믿음으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성령님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지금까지 개척한 교회를 예수님보다 더 중히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눈이 흐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복잡한 마음으로 기도하는데 예수님보다도 교회를 더 중히 여겨서 내린 결정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덜컥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주인 되신 예수님을 더 중히 여겨서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내가 개척한 교회를 더 중히 여겨서 교회에 헌신하는 것과 예수님을 더 중히 여겨서 교회에 헌신하는 것은 비슷한 것 같지만 전자는 저를 존중히 여기는 것이고 후자는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새해에는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을 더 중히 여겨서 헌신함으로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믿음을 회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의 주님! 우리들이 간접 신앙이 아니라 직접 주님을 만나는 믿음이 되게 하시며, 영적인 눈이 흐리지 않아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게 하시며, 매일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하는 믿음이 되게 하소서.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시며, 예배를 존중히 여기게 하시며,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을 더 중히 여김으로 하나님을 가장 존중히 여기는 믿음을 회복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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