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는가요?
룻기 2장 9 - 16절 /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304장)
9.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10.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11.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12.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13.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14.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하므로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15.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16.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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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9월 첫째 주일부터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창조절이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은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이주한 이방 여인 룻이 미래의 남편이 될 보아스를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이방 여인 룻의 입장뿐만 아니라 보아스의 입장까지 바라보면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아스가 이방 여인 룻에게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보아스가 어떻게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았는지를 깨닫고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보아스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어떻게 쓰임 받고 있습니까?
첫째로 보아스가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안전하게 보호해 주었습니다. 당시에 모압 공주였던 룻이 시어머니와 함께하려고 유대의 베들레헴 땅에 이주를 선택함으로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 땅에서 이방인으로 차별받고, 여인으로 차별받고, 과부로 차별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차별받을 것을 알고도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믿음으로 유대 땅에 왔습니다(1:16). 그리고 그녀는 시어머니를 봉양하려고 보아스의 보리밭에서 이삭을 주었습니다(3절). 당시에 룻처럼 이방인이며, 여성이며, 가난한 과부들은 밭에서 이삭을 줍다가 성희롱과 성폭력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보아스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방 여인 룻을 건드리지 말라”고 명령합니다(9절).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길을 선택했던 룻에게 보아스를 축복의 통로로 보내서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받는” 것을 보여줍니다(12절). 우리도 보아스처럼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이웃을 차별하며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인생으로 쓰임 받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보아스가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인생의 갈증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는 이방 여인 룻에게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고 합니다(9절). 당시에 보리를 수확하는 시기가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어서 낮에는 갈증을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아스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여 이방 여인에게 물을 마시게 하는 일은 매우 특별한 배려였습니다. 또한 이방 여인은 하나님을 선택하여 현실의 문제로 육신의 갈증뿐만 아니라 구원의 문제로 영혼의 갈증까지 해결 받았습니다. 신약에서 사마리아 여인도 육신의 갈증을 해결하려고 우물가에 왔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영혼의 갈증까지 해결 받았습니다. 세상은 사람들이 육신의 갈증을 느끼도록 끊임없이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만나서 육신의 갈증뿐만 아니라 영혼의 갈증까지 해결받고 구원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육신의 갈증을 느끼도록 유혹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을 전해서 영혼의 갈증까지 해결해 주는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보아스가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어떻게 이방 여인을 위로했습니까?
첫째로 보아스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며 위로했습니다. 모압의 공주로 태어난 룻은 아버지의 의견에 따라 유대인의 재산 많은 엘리멜렉의 아들과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결혼 생활 십 년쯤에 아이가 없는 채로 남편을 잃었습니다. 룻은 언니처럼 모압에서 공주로 남아 새 출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조국과 부모와 우상을 모두 버리고 시어머니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이주했습니다. 당시에 무더운 여름날 보리밭에서 이삭을 줍는 일은 하녀들이 하는 미천한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모압에서 공주였던 룻이 유대 땅에서는 하루아침에 하녀의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아스를 축복의 통로로 보내어 그녀의 마음이 분명히 알려졌다고 헤아리면서 위로했습니다(11절). 그래서 그녀는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라고 합니다(13절). 오늘날도 목회자인 제 마음을 누군가 헤아려 줄 때 너무 위로를 받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헤아리며 위로하는지를 돌아보았습니다. 우리도 보아스처럼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이웃의 마음을 헤아리고 위로하면서 새 힘을 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보아스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그녀가 온전한 상을 받게 했습니다. 보아스는 룻을 위로만 해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축복했습니다(12절). 그리고 룻은 보아스의 축복대로 온전한 상을 받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녀는 다윗 왕의 할머니가 되었으며,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된 이방 여인이 되었습니다(마1:5,6). 이처럼 이방 여인이 온전한 상을 받아서 믿음의 가문을 세운 이유가 무엇인가요? 모압의 공주였던 룻이 고향과 가족과 우상을 떠나서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땅과 하나님의 백성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보이스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여 룻이 세상에서 차별받는 불행한 이방 여인이었는데 그녀를 믿음의 주인공으로 세워서 하늘의 복을 받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녀의 선택은 시어머니와 함께하기 위한 인간적 도리를 넘어서서 하나님의 날개 아래로 피신하여 보아스와 함께 믿음의 가문을 세운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하나님께로 피신하는 믿음의 선택으로 온전한 상을 받아서 주님과 함께하는 믿음의 가문을 세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 보아스가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까?
첫째로 보아스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보이지 않는 은혜를 흘려보냈습니다. 그는 “이방 여인 룻을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고 합니다(16절). 보아스는 자신을 드러내면서 생색내는 축복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배려하는 축복을 했습니다. 성경에서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마6:3). 이처럼 보아스는 보이지 않는 배려로 룻이 많은 양의 이삭을 주어서 시어머니 나오미를 봉양하도록 했습니다. 우리 교회도 보아스처럼 보이지 않는 손길로 교회를 섬기시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또한 당시에 인생의 경험이 많았던 나오미는 보아스의 배려가 없었다면 며느리 룻이 많은 이삭을 주울 수 없다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라고 합니다(20절). 이처럼 보아스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눔으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축복해 주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주님의 사랑을 나눔으로 다른 사람들이 축복해 주는 인생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사람의 실패도 믿음의 씨앗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나오미가 모압으로 이민갔다가 남편과 자녀들을 잃어버리고 베들레헴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심히 괴롭다는 뜻의 ‘마라’로 부르라고 합니다(1:20). 그러나 나오미처럼 사람의 실패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실패가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나오미의 실패까지도 사용하셔서 위대한 믿음의 가문을 세웠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주님을 믿으면 세상에서 실패하지 않고 성공한다는 기복 신앙의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보아스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여 나오미가 세상에서 실패하여 심히 괴로운 인생이었는데 그녀가 믿음의 유산을 하나 남겨서 하늘의 복을 받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의 씨앗 하나를 통하여 다윗 왕의 조상이 되고, 예수님이 오시는 길이 되었습니다(마1:5,6). 이처럼 오늘날 교회도 많은 숫자를 모으는 양뿐만 아니라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하는 질도 중요합니다. 제가 최근에 우리 교회가 앞으로 어떤 비전을 세워야 하는지 묻는 기도를 하면 성령님은 한 영혼을 구원하는 중심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기도를 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잣대로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믿음의 씨앗을 남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말씀 다지기 (함께 되새김질 하는 시간입니다.)
1. 모압의 공주였던 룻이 유대 땅에 와서 차별받는 세 가지는 무엇인가요?(9절)
2. 보아스가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룻에게 어떻게 쓰임 받았나요?(11절)
3. 보아스가 축복하여 룻이 받았던 온전한 상은 무엇인가요?(마1:5,6)
4. 세상에서 나오미가 실패했어도 주님의 눈에 하늘의 복을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요?(1:20)
□ 말씀 적용하기 (서로 삶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1. 우리가 주님을 선택하여 하나님께 보호를 받았던 은혜는 무엇이 있나요?
2. 우리가 주님을 만나서 영혼의 갈증을 해결받고 구원받았던 체험은 언제 있었나요?
3. 우리가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이웃의 마음을 헤아리고 위로를 해주었던 경험은
무엇이 있나요?
4. 우리가 믿음의 씨앗을 하나 남기기 위하여 기도하는 영혼은 누가 있나요?
□ 기도하기
사랑의 주님! 우리가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이웃을 차별하며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인생으로 쓰임받고, 세상에서 육신의 갈증을 느끼도록 유혹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을 전해서 영혼의 갈증까지 해결해 주는 축복의 통로로 쓰임받게 하소서. 우리가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이웃의 마음을 헤아리고 위로하면서 새 힘을 주고, 하나님께로 피신하는 믿음의 선택으로 온전한 상을 받아서 주님과 함께하는 믿음의 가문을 세우게 하소서. 우리가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주님의 사랑을 나눔으로 다른 사람들이 축복해 주는 인생이 되며, 세상의 잣대로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한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여 믿음의 씨앗을 남기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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