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믿기 전에 범한 죄는 무엇인가?
사도행전 26장 9-18절 / 날 대속하신 예수께(321장)
9.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10.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11.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12.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13.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16.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0. 들어가는 글
오늘은 8월 첫 번째 주일입니다. 사도행전에 사도 바울이 회심한 고백에 대하여 9장과 22장과 26장에 세 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이 자신의 회심한 고백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자 되신 예수님을 증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회심한 사건을 고백할 때 3단계가 있습니다. 처음단계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죄인된 모습을 전하고, 다음 단계는 예수님을 어떻게 만났는지를 전하고, 마지막 단계는 예수님을 믿은 후에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서는 다음 단계의 예수님을 어떻게 만났는지를 강조합니다. 그리고 22장에서는 마지막 단계의 예수님을 믿은 후에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강조합니다. 오늘 본문 26장에서는 처음 단계의 예수님을 믿기 전에 어떤 죄를 범했는지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바울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 어떤 죄를 범했는데, 예수님을 만난 후에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깨닫고,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어떤 죄를 범했습니까?
첫째로 스스로 생각하여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바울은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했다”고 합니다(9절).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구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바울처럼 ‘많은 일을 행하는’ 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열심보다 주님의 방법대로 하는 것이 더 우선되어야 합니다. 한국 교인들은 교회에서 많은 일을 했다는 열심으로 신앙의 만족을 채우려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뜻이 무엇인지를 구하며 주님의 방법대로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사람의 권한을 잘 못 사용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았다”고 합니다(10절), 다시 한번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다”고 합니다(12절). 그는 대제사장에게 권한을 받았다고 두 번씩이나 강조합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에게 받은 권한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에게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대제사장에게 받은 권한을 가지고 생명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일에 사용했습니다(10절).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된 후에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권한을 고백합니다(갈1:1). 그리고 하나님께 받은 권한을 가지고 죽어가는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마음을 다했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권한으로 생명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권한으로 생명을 살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셋째로 강제로 모독하게 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바울은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했다”고 합니다(11절). 여기서 ‘강제로 모독하는 말’은 주님을 강제로 모독하여 배교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강제로 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인격을 파괴하는 죄악입니다. 신구약 중간기에 셀류쿠스의 안티오쿠스 왕이 예루살렘을 침략하여 유대인에게 강제로 주님을 모독하여 배교하도록 했습니다. 과거에 유대인이 받았던 인격 파괴의 고통을 이제는 그리스도인에게 행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주님의 일이라고 하면서 교인을 강제로 동원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일이라도 강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선택하여 헌신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바울은 예수님을 어떻게 만났습니까?
하나는 빛으로 오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바울은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고 합니다(13절). 예수님은 바울에게 해보다 더 밝은 빛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이 어둠속에서 방황하는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어둠속에서 멸망의 길을 갔기 때문에 빛으로 오신 주님이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빛으로 오신 주님을 만났을 때 그 빛으로 구원의 길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빛으로 오신 주님을 따라가면 구원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동방박사들도 베들레헴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를 경배하려 갈 때 길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빛을 따라갔기 때문에 만날 수 있었습니다(마2:9). 우리도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따라감으로 구원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은 주님이 나타나신 목적을 알았습니다. 바울이 주님을 만났을 때 먼저는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고 합니다(16절). 바울이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했다고 하늘로 들림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머문 땅에서 일어나 자신의 발로 서서 주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로 한다’고 합니다(16절). 여기에 두 가지 변화가 있습니다. 먼저는 신분의 변화입니다. 예수님을 주인 삼은 종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모든 바울 서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로 시작합니다(롬1:1). 바울은 자신이 최고가 되려다가 변화되어서 예수님을 최고의 주인으로 섬기는 종이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존재하는 목적이 변화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땅에서 예수님의 증인으로 변화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성령이 임하시면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행1:8). 그러므로 우리도 바울처럼 존재하는 목적이 예수님의 증인으로 변화되어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 바울이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는 사명입니다(18절). 세상에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그 눈을 뜨게’ 해야 합니다. 바울도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영적인 소경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다멕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남으로 눈을 떴을 때 오직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오늘날도 영적인 소경에서 눈을 떴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바울처럼 주님의 말씀이 조금도 의심없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저도 주님을 만나기 전에 성경을 비판했던 이유는 영적인 소경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주님을 만난 후에는 눈을 떠서 성경의 말씀이 의심없이 믿어졌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영적인 소경에서 눈을 떠서 주님의 말씀을 의심없이 믿으며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사명입니다(18절). 사탄의 권세는 사람의 생명을 파괴하고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헬라어로 ‘돌아오게’의 ‘에피스트레포’는 방향 전환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만약에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에피스트레포’의 방향 전환이 부분적으로 되면 주님과 함께할 수 없습니다. 성도들은 주일마다 주님께로 돌아오는 ‘에피스트레포’의 방향 전환이 완벽한지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에피스트레포’의 방향 전환이 부분적으로가 아니라 완벽하게 이루어져 구원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기업을 얻게 하는 사명입니다(18절). 여기서 ‘하나님의 기업’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기업을 얻으려면 주님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아 거룩해져야 합니다. 바울의 거룩은 우리의 노력으로 깨끗해져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믿음으로 죄사함이 선언되었을 때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죄사함을 선언함으로 주신 거룩함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이 선언한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상의 소비 앞에서 정체성을, 세상의 과시 앞에서 나다움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세상에서 소비하고픈 욕구에 휩쓸려 가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나다움을 잃어버리면 세상에서 과시하고픈 욕망에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정체성과 나다움을 회복할 때 거룩함을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죄사함을 선언 받아 거룩하게 된 것을 지켜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받기를 소망합니다.
□ 말씀 다지기 (함께 되새김질 하는 시간입니다.)
1.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범했던 세 가지 죄악은 무엇입니까?(9,10,11절)
2. 바울이 어둠속에서 만난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마2:9)
3. 바울이 빛 되신 주님을 만나고 어떤 신분으로 변화되었습니까?(16절)
4. 바울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세 가지 사명은 무엇입니까?(18절)
□ 말씀 적용하기 (서로 삶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1.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여 주님의 뜻에서 벗어난 경험은 무엇이 있나요?
2. 우리가 강제로 시켜본 일과 강제로 받아본 일의 경험은 무엇이 있나요?
3. 우리의 영적인 눈이 떠서 주님의 말씀이 언제부터 의심 없이 믿어졌나요?
4.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오는 에피스트레포의 방향전환이 언제부터 일어났나요?
□ 기도하기
사랑의 주님!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뜻이 무엇인지를 구하여 주님의 방법을 따르며, 사람의 권한으로 생명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권한으로 생명을 살리며, 주님의 일이라고 강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선택하여 헌신하게 하소서. 우리도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따라가며, 예수님을 최고의 주인으로 섬기는 종으로 변화되며,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이 예수님의 증인으로 변화되게 하소서. 우리도 영적인 소경에서 눈을 떠서 주님의 말씀을 의심없이 믿으며,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에피스트레포’의 방향 전환이 완벽하게 이루어져 구원받으며, 거룩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죄사함을 선언 받아 거룩하게 된 것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받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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