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구원받은 후에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베드로전서 1장 13 - 19절 / 주안에 있는 나에게(370장)
13.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14.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15.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17.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8.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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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1월 첫 번째 주일입니다. 베드로는 1장 3절에서부터 12절까지 구원의 영광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3절부터 “그러므로”의 접속사를 통하여 구원받은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고 각자의 삶에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 주님께 신앙의 코드를 맞추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첫째로 우리가 순종의 자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라”고 합니다(14절). 우리가 순종하는 자식이 되려면 예전에 주님을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사욕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인들이 과거의 사욕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순종의 자식으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전에 따르던 사욕은 무엇입니까?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육신에서 나오는 욕망을 의미하는데,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할수록 예전의 사욕이 크게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과거의 사욕을 본받지 않으려면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옮겨가는 방법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옮겨가서 순종의 자식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우리를 부르신 주님께서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합니다(15절). 여기서 우리를 부르신 주님께서 거룩한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믿는다면 자신의 모든 행실도 거룩하신 주님께 코드를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 어린아이 신앙에서 점점 더 자라날수록 모든 행실을 거룩한 주님께 코드를 맞추면서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 자신과 코드가 맞지 않는다고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를 향해 코드가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 만큼 자신이 거룩한 주님께 얼마나 코드를 맞추고 있는지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주님께 코드를 맞추면서 더 성숙한 믿음으로 자라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셋째로 우리의 영혼이 더러워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양육하면서 가장 중요한 교육이 거룩한 주님께 코드를 맞추는 것입니다(16절).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는 자녀를 교육할 때 철저히 거룩한 주님께 코드를 맞추도록 양육했습니다. 그녀는 자녀들을 위해 매일 한 시간씩 기도했고, 아침에 눈을 뜰 때와 잠자리에 들 때 반드시 주기도문을 외우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수산나의 자녀 중에 속을 썩이는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딸을 불러놓고 검정 숯댕이를 한 다발 주면서 힘껏 안아보라고 했습니다. 고집 센 딸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을 때 수산나는 이 숯은 뜨겁지 않아서 불에 델 염려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딸은 손과 옷에 검댕이가 묻는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수산나는 딸을 꼭 안아주면서 사람이 그릇된 행동을 했다고 화상을 입지 않지만 자신의 영혼이 더러워진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도들이 죄악을 범한다고 화상을 입지 않지만 자신의 영혼이 더러워짐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영혼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더러운 죄악을 품지 않고 분리되기를 소망합니다.
2.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첫째로 우리가 헛된 행실에서 대속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 세상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나그네로 살아가라고 합니다(17절). 여기서 나그네로 지낸다는 것은 세상의 집착에서 벗어나서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았다”고 합니다(18절). 여기서 헛된 행실은 단순히 잘못된 행동뿐만 아니라 전혀 소망 없이 살아가는 가치 없는 인생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헛된 행실에서 주님의 대속함을 받아야만 세상의 집착에서 벗어나서 천국을 소망하는 나그네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소망이 없는 헛된 행실에서 주님의 대속함을 받고 천국을 소망하는 나그네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보배로운 피로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세상은 돈과 권력으로 모든 것을 사고파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생명과 구원은 결코 물질로 사고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금과 은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지만, 결국은 썩어져서 사라진다고 합니다(18절). 여기서 세상의 재물과 공로와 업적으로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라”고 합니다(19절). 여기서 보배로운 피는 실제로 우리의 죄값을 치르신 희생의 대가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가 주님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받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지 않는다면 주님의 보배로운 피를 모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보배로운 피를 모욕하지 않기 위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셋째로 우리가 예수의 아바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아바타라는 영화가 흥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아바타’라는 의미를 자주 사용합니다. 아바타의 영화에서 두 다리를 못 쓰는 장애인의 남자 주인공이 캡슐 속으로 들어가서 자신의 아바타와 연결되면 다른 세상에서 정상인과 똑같이 행동합니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 됩니다. 장애인의 남자 주인공은 아바타로 연결되어 다른 세상을 오가면서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습니다. 성도들도 교회와 세상을 아바타처럼 오가면서 정체성의 혼란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보배로운 피로 구원받은 믿음을 가지고 세상에서 예수의 아바타로 살 때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19절). 그러나 세상의 모습을 가지고 교회에서 사욕의 아바타처럼 활동하면 다툼과 분열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세상의 모습으로 교회에서 사욕의 아바타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거룩한 모습으로 세상에서 예수의 아바타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말씀 다지기 (함께 되새김질 하는 시간입니다.)
1. 우리가 예전에 따르던 사욕은 무엇들이 있었나요?(14절)
2. 수산나가 고집센 딸에게 검정 숯댕이를 안아보라고 했던
영적 교훈은 무엇인가요?(16절)
3. 우리가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요?(17,18절)
4. 예수님이 보혈이 우리에게 보배로운 이유가 무엇인가요?(19절)
□ 말씀 적용하기 (서로 삶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1. 우리가 예전에 따르던 사욕 중에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무엇인가요?
2. 우리가 언제부터 보배로운 피로 구원받은 확신을 가지게 되었나요?
3. 우리가 교회를 다니면서 자신의 영혼을 더럽히고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나요?
4. 우리가 세상에서 예수님의 아바타로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 있나요?
□ 기도하기
사랑의 주님! 우리가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옮겨가서 순종의 자식이 되고, 거룩한 주님께 코드를 맞추면서 더 성숙한 믿음으로 자라나게 하소서. 우리의 영혼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죄악을 품지 않고 분리되며, 소망이 없는 헛된 행실에서 주님의 대속함을 받고 천국을 소망하는 나그네로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는 주님의 보배로운 피를 모욕하지 않기 위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되고, 세상의 모습으로 교회에서 사욕의 아바타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거룩한 모습으로 세상에서 예수의 아바타로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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