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우리의 콤플렉스를 극복해야 하나요?
민수기 14장 39 - 45절 /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272장)
39 모세가 이 말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알리매 백성이 크게 슬퍼하여/ 40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산 꼭대기로 올라가며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가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곳으로 올라가리니 우리가 범죄하였음이니이다/ 41 모세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제 여호와의 명령을 범하느냐 이 일이 형통하지 못하리라/ 42 여호와께서 너희 중에 계시지 아니하니 올라가지 말라 너희의 대적 앞에서 패할까 하노라/ 43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너희 앞에 있으니 너희가 그 칼에 망하리라 너희가 여호와를 배반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나/ 44 그들이 그래도 산 꼭대기로 올라갔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모세는 진영을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45 아말렉인과 산간지대에 거주하는 가나안인이 내려와 그들을 무찌르고 호르마까지 이르렀더라
0. 들어가는 글
오늘은 7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어 홍해를 건넌 후에 광야를 지나서 드디어 3일 길이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가데스 바네아에 진지를 구축합니다. 모세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이스라엘 지파의 수령들로 구성된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으로 보냅니다. 그들이 40일간의 정탐 후에 두 부류로 갈라져서 보고합니다. 하나는 여호수아와 갈렙이 긍정적으로 하나님이 함께하면 가나안 정복할 수 있다고 보고합니다. 또 하나는 10명의 정탐꾼이 부정적으로 가나안의 견고한 성에 거하는 아낙의 장대한 자손들 때문에 정복할 수 없다고 보고합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긍정적인 보고가 아니라 부정적인 보고에 동조하여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면서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을 정탐했던 40일을 일 년씩 계산하여 광야 40년 동안 방황하는 징계를 내렸습니다(33절).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의 반응이 나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후에 그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깨닫고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후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첫째로 어느 것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서 두 부류로 나누어졌습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12명이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에 긍정적인 부류와 부정적인 부류로 나누어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느 것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서 나누어집니다. 10명의 정탐꾼이 가나안 정복을 부정적으로 바라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직 상대방의 강함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니다(민13:31). 그들을 인도하는 하나님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 정복을 긍정적으로 바라본 이유는 무엇입니까? 상대방도 강하지만 자신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8절). 오늘날 우리도 무엇에 초점을 맞추며 살고 있습니까? 저도 교회의 힘든 상황에만 초점을 맞추면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보면서 놀랠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힘든 상황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부정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주님께 초점을 맞추면서 긍정적으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후에 엇박자 신앙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 40년 동안 방황하는 징계를 내렸을 때 크게 슬퍼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39절).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징계를 거부하고 오히려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곳으로 올라가겠다고 합니다(40절). 이스라엘 백성의 반응이 안타까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타이밍이 맞지 않는 청개구리 신앙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라고 말씀하면 아낙 자손들이 두려워서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하는 징계를 받은 후에는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전혀 코드가 맞지 않는 엇박자 신앙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입장만을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질수록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입장만을 내세우는 엇박자 신앙이 아니라 주님의 입장으로 변화되는 역지사지의 신앙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후에 가나안 땅에 돌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첫째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신 비전이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크게 슬퍼하면서 “우리가 범죄하였음이니이다”고 회개합니다(40절). 그러나 그들의 회개가 진짜가 아닌 이유는 순종을 거부하면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짜 회계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징계를 겸손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원망했던 그들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서 가나안 땅에 가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주님이 주신 비전보다 어느 것이 더 편한지를 저울질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의 태도가 바뀐 이유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징계받는 것보다 오히려 가나안 땅에 올라가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편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상대적으로 더 편한 길을 가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변질시키는 것입니다. 최근에 제가 힘들게 선교지를 다니지 말고 더 편하게 여행이나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처럼 우리가 더 편한 길로만 가려고 저울질을 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변질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더 편한 길로만 가려고 저울질하는 것이 아니라 더 힘들지라도 오직 주님이 주신 비전을 따라가는 믿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후순위가 될 때 변질되는 것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사사기 시대에 삼손도 주님이 주신 비전을 후순위로 변질시켰습니다. 삼손이 처음에는 블레셋 여인과 결혼하려는 이유가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있는 블레셋을 물리치려는 비전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삼손이 주님의 비전을 붙잡고 나아갈 때는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나 삼손이 블레셋 여인을 육신의 정욕으로 바라보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면서 주님이 주신 비전은 후순위로 변질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힘의 근원이었던 머리카락이 잘리고 그와 함께했던 하나님은 떠나갔습니다(삿16:20). 그리고 그는 블레셋의 포로로 잡혀가서 소경이 된 후에 소처럼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삿16:21). 이처럼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자신의 욕망 때문에 후순위로 변질될 때 하나님은 떠나가고 영적인 소경이 되어 세상의 포로로 살게 됩니다. 우리 교회도 한 영혼을 구원하는 비전이 후순위로 변질되면 타락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후순위로 변질되지 않고 항상 전부가 되어서 타락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3. 하나님의 징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 콤플렉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징계를 거부하고 가나안 땅에 올라가려고 고집부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차라리 가나안 땅으로 가다가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할 만큼 광야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가장 큰 문제는 광야의 콤플렉스 때문에 그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전혀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광야에서만 벗어날 수 있다면 여호와를 배반까지 하면서 가나안 땅에 올라가겠다고 합니다(43절). 그러나 모세는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인도하게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다”고 증거합니다(신29:5). 이처럼 참된 믿음은 나중의 결과를 보고 믿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주님을 신뢰함으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의 콤플렉스를 두려워하는 것보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더 두려워함으로 선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요셉이 콤플렉스를 극복했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역전시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광야의 콤플렉스를 극복해야만 합니다. 그들의 조상 요셉은 광야의 콤플렉스를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요셉은 야곱의 아들 12명 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특권으로 채색옷을 입었습니다(창37:3). 그러나 형들의 시기로 그의 채색옷이 찢어졌고 노예 옷을 입었습니다. 요셉은 인정하기 힘든 현실이었지만 노예 옷을 입는 콤플렉스를 받아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라고 합니다(창39:2). 그러나 요셉의 상황이 더 나빠져서 누명을 쓰고 죄수 옷을 입었습니다. 그는 억울한 누명까지 쓰고 견디기 힘들었지만 죄수 옷을 입는 콤플렉스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라고 합니다(창39:21). 요셉은 채색옷이나 노예 옷이나 죄수 옷처럼 외적인 콤플렉스보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형통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의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저도 콤플렉스가 많은 사람이지만 주님과 함께하면서 쓰임받고 있는 것이 형통의 복이 됩니다. 오늘날 우리를 힘들게 하는 콤플렉스가 있을지라도 주님과 함께하는 것을 형통의 복으로 믿고 자신의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말씀 다지기 (함께 되새김질 하는 시간입니다.)
1. 12명의 정탐꾼이 긍정적인 부류와 부정적인 부류로 나누어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민13:31)
2. 이스라엘 백성이 징계를 받은 후에 반응이 안타까운 이유는 무엇인가요?(39,40절)
3. 삼손이 영적인 소경이 되어서 블레셋의 포로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삿16:20)
4. 애굽에서 총리가 된 요셉이 광야의 콤플렉스를 어떻게 극복했나요?(창39:2,21)
□ 말씀 적용하기 (서로 삶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1. 우리가 주님께 초점을 맞추어서 긍정적으로 반응했던 경험은 무엇이 있었나요?
2.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청개구리처럼 반응했던 일은 무엇이 있었나요?
3.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비전이 후순위로 밀리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요?
4. 우리에게 있는 콤플레스는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요?
□ 기도하기
사랑의 주님! 우리는 힘든 상황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부정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주님께 초점을 맞추며 긍정적으로 살고,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우는 엇박자 신앙이 아니라 주님의 입장으로 변화되는 역지사지의 신앙이 되게 하소서. 우리는 더 편한 길로만 가려고 저울질하는 것이 아니라 더 힘들지라도 주님이 주신 비전을 따라가는 믿음이 되며,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후순위로 변질되지 않고 항상 전부가 되어서 타락하지 않게 하소서. 우리의 콤플렉스를 두려워하는 것보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더 두려워함으로 선한 인도하심을 받으며, 또한 나를 힘들게 하는 콤플렉스가 있을지라도 주님과 함께하는 것을 형통의 복으로 믿고 자신의 인생을 역전시키게 하소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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