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3월 다섯째주 목장교재 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반응은 무엇인가요? "누가복음 19장 28-42절
- 조영식 2026.3.29 조회 367
-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반응은 무엇인가요?
누가복음 19장 28 - 42절 / 인애하신 구세주여(279장)
28.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29.감람원이라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30.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1.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32.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33.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34.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35.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36.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37.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38.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39.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40.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41.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0. 들어가는 글
오늘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 주일로 지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주님을 보면서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묵상하고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예수님의 제자들과 나귀의 주인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첫째로 제자들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과 제자들의 생각이 충돌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 둘을 보내며 아무도 타보지 않는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풀어서 오라고 합니다(30절). 그러나 사람의 생각으로는 나귀 주인의 허락을 먼저 받지 않으면 도적질로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과 사람의 생각 사이에서 갈등하며 고민할 때 수 어떤 선택을 했습니까?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먼저 따르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각까지 주장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성도들도 주님의 말씀과 사람의 생각 사이에서 갈등하며 고민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각까지 주장하심을 체험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나귀의 주인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나귀 주인은 자신의 허락도 없이 나귀 새끼를 푸는 것을 보면서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고 묻습니다(33절).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주께서 쓰시겠다”라고 대답할 때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31,34절). 나귀 주인은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도구로 나귀 새끼를 순종의 마음으로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나귀 주인처럼 우리의 것이 주님의 선한 도구로 쓰임 받는 것이 가장 큰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나귀 새끼를 탔습니까? 첫째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의 성취입니다.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을 주님께서 다 이루고 있습니다(슥9:9). 둘째는 겸손하신 예수님의 성품이 나옵니다. 나귀 중에서도 새끼를 타심으로 가장 겸손한 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셋째는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전쟁터에서 달리는 말이 아니라 나귀를 타심으로 평화를 이루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우리도 나귀 주인처럼 내 것이 있다면 주님의 선한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첫째로 예수님께서 구원자 되심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와 온 무리들이 주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렸습니다(37절). 이런 제자들의 반응과 달리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라고 합니다(39절).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제자들을 책망하라는 요구에 어떤 의도가 있나요? 그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부르는지를 보면 파악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선생이여’라고 부릅니다(39절). 그들의 의도는 선생 수준의 예수를 주님처럼 찬양하는 제자들의 태도가 너무 부적절하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예수님은 구원자가 아니라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선생이나 성인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성인이 아니라 오직 구원자로 믿고 나의 주님이 되심을 고백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틀로 평가하면서 주님의 능력을 부정합니다. 당시에 “제자와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라고 합니다(37절).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주님께서 이미 보여주었던 능력까지도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님께서 보여준 능력을 부정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틀에만 갇혀서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정해놓은 틀에서 벗어나면 모든 것을 잘못되었다고 부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작은 주머니에 큰 물건을 담으려고 한다면 찢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작은 머리에 하늘 같은 예수님을 담으려고 하니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틀에 예수님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나를 맞추어서 변화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반응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우리의 영적인 눈이 열리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라고 합니다(42절). 우리의 눈에 숨겨졌던 것이 열리면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믿으면서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도 눈이 가리어져서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눅24:16). 그 결과로 그들은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슬픈 빛에 사로잡혔습니다(눅24:17). 그러나 그들의 눈이 밝아져서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볼 때 모든 슬픔이 사라지고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눅24:31). 저도 탄광촌에서 태어나서 청소년 시절에 아무런 희망도 없이 무기력하게 살았습니다. 그런 제가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인생의 새로운 희망이 생겼습니다. 오늘날도 우리의 영적인 눈이 밝아져서 부활하신 주님을 믿음으로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우리의 마음에 평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원하는 평화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구원의 평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십자가의 길을 가심으로 모든 죄악을 제거하고 구원의 평화를 완성했습니다(38절). 예수님은 구원의 평화를 어떻게 이루었습니까? 십자가에서 이기려는 마음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비교하고 경쟁하고 판단하고 자랑하는 마음에는 모두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이기려는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양보하고 이해하고 손해보고 져주고 나누려는 마음에는 모두 주님 덕분에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오늘날도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상대방을 이기려고 하기 때문에 충돌하면서 평화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금주에 고난 주간을 보내면서 우리의 자존심 때문에 이기려는 마음이 아니라 주님 덕분에 사랑의 마음으로 교회와 가정에서 구원의 평화를 만들어가기를 소망합니다.
□ 말씀 다지기 (함께 되새김질 하는 시간입니다.)
1.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과 사람의 생각 사이에서 갈등할 때 어떤 선택을 했나요?(30절)
2.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나귀 새끼를 타던 이유는 무엇인가요?(슥9:9)
3. 바리새인들이 주님께서 보여준 능력을 부정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39절)
4. 우리의 눈에 숨겨졌던 것이 열리면 어떤 역사가 일어날 수 있나요?(눅24:16,17,31)
□ 말씀 적용하기 (서로 삶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1. 우리의 생각과 주님의 말씀 사이에서 갈등할 때 먼저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경험은 무엇이 있나요?
2. 우리의 정해놓은 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며 실수했던 경험은 무엇이 있나요?
3. 우리의 어두웠던 눈이 밝아져서 언제부터 부활하신 주님을 확실히 믿게 되었나요?
4. 우리가 이기려는 마음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평화를 이루었던 체험은
무엇이 있나요?
□ 기도하기
사랑의 주님! 우리는 먼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각까지 주장하심을 체험하며, 나귀 주인처럼 내 것이 있다면 주님의 선한 도구로 쓰임 받게 하소서. 우리는 예수님을 성인이 아니라 오직 구원자로 믿고 나의 주님이 되심을 고백하며, 내 틀에 예수님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나를 맞추어서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우리의 영적인 눈이 밝아져서 부활하신 주님을 믿음으로 새로운 희망을 품으며, 고난 주간을 보내면서 우리의 자존심 때문에 이기려는 마음이 아니라 주님 덕분에 사랑의 마음으로 교회와 가정에서 구원의 평화를 만들어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댓글 0


